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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오-메독(Haut-Medoc)

다시 와인 이야기로 넘어 온다. 와인은 건강한 음료, 포도 알은 무균의 순수한 물탱크이다. 포도가 자라면서 나무뿌리에서 빨아올린 지하수로 포도 알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  포도의 즙으로 만든 와인을 마시는 것은 청정 지하수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포도즙이  와인 병에 담긴 뒤 물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여러 차례 발효와 숙성을 거쳐 침전물과  찌꺼기들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레드와인이든 화이트와인이든 발효가 막 끝난 뒤엔 모두  투명하지 않고 막걸리처럼 탁한 빛을 띤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찌꺼기는 침전되고,  위의 맑아진 부분을 다른 통에 따르기를 계속하면서 숙성과정을 거치면 와인이 투명해지는  것이다.우리가 통상 마시는 750㎖ 와인 한 병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포도의 양은 약 1㎏~1,2Kg정도이다. 따라서 와인 한 병을 마시는 것은 포도 거의 1㎏ 이상을 먹는 것과 같다. 통계적으로 1㎏의 포도는 이를 으깨 즙을 만드는 과정에서 20%(200㎖)가 껍질과 씨의 찌꺼기로 빠져나가고, 발효 및 숙성, 여과 과정에서 5%(50㎖)가 없어져 결국 750㎖ 정도의 와인이 생산되기 때문으로 본다.

와인을 즐기는 데에 까다로운 지식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와인의 마시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하늘의 별 수 만큼 많은 종류의 와인들 앞에서 내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의 고향인 떼르와르, 포도품종, 양조 기법, 빈티지 등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다. 와인의 세계에는 지성과 취향이 있다. 따라서 와인을 즐기려면  우리도 지성과 취향이 필요하다. 특히 취향은 예술적 자질과 교양에서 나온다.

와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와인 속에는 이야기할 주제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와인을 잘 즐기려면 와인을 둘러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첨가되어야 한다. 한  잔의 와인 속에 멀리 두고 온 고향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숲, 땅, 하늘  그리고 자기를 태어나게 보살펴 준 사람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포도재배에서 병입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와인메이커라는 말을 우리는  싫어한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과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을 사랑하면 와인을 알게 되고, 와인을 알게 되면 와인이 보인다. 와인이 보이면  와인 마시기가 보다 더 즐겁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라벨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소개하는 와인 라벨에 보이는 표지의 키워드는 Haut-Medoc이다. 그리고 2012라는 연도 표시이다. 오-메독(Haut-Medoc)은 포도 재배 산지이고, 이 이 와인이 나온 떼루아(terroir)를 의마하는 것이다. 우선 떼루아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떼루아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렵다. 떼루아는 포도밭 하나하나를 특징 지워 구별하게 만드는 자연요소와 인적 요소가 합쳐진 의미이다. 와인 산지인 포도밭의 위치, 토질, 기후 등 자연적 요소와 그곳에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의 역사,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기술, 장인정신 등의 인적 요소를 모두 통틀어 말하는 개념이 떼루아이다. 같은 품종이라도 토양과 기후, 자연 환경, 재배 방법, 포도원의 위치 및 지형학적 조건 등이 달라지면 와인의 개성도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떼루아란 토양의 성질이나 구조, 포도밭의 경사도나 방향, 일조량, 온도, 강수량 등이 모두 포함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떼르와르가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이다.

오늘 소개하는 와인의 떼루아 오-메독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메독 지역이다.  메독 지역은 바다 쪽에 가까운 곳이 바 메독(Bas-Médoc)이고, 남쪽이 오 메독(Haut-Médoc)이다. 프랑스어로 바(bas)는 ‘낮은’이라는 형용사이고, 오(Haut)라는 형용사는 ‘높은’이라는 뜻이다. 단지 지대가 높고 낮은데서 쓰인 형용사이기 때문에, ‘품질이 낮은’이라는 뜻으로 오해를 할까 봐 바-메독이라는 지명은 라벨에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에서 원산지 명칭을 표시하는 O의 자리에 메독이라고 다음의 예처럼 Appellation Médoc Contrôlée이라고 쓰여 있으면, 바-메독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를 원료로 해서 생산된 와인이다.

사실은 오-메독 지역 때문에 메독 지역이 알려진 것이다. ‘오(Haut)’는 ‘높다’는 의미로 메독 남부의 비교적 높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강을 내려다보며 태양의 은혜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이 땅에서 최고로 좋은 포도가 재배되고 최고급 와인이 만들어 진다.

오-메독 지역 안에는 원산지 명칭을 쓸 수 있는 마을이 6개이다. 메독 지역 안에는 Commune(마을)이 약 50개 있는데, 그 중 6개 마을만 자신의 이름을 산지명으로 와인에 표기할 수 있다. 그리고 1855년 그랑 크뤼로 선정된 샤또가 60개이다. 6개의 마을을 북쪽에서부터 열거해 본다. 생-떼스떼프(Saint-Esthèphe), 뽀이약(Pauillac), 생 쥴리앙(Saint-Julien), 리스트락(listrac), 물리스(Moulis), 마르고(Margaux)이다. 그랑 크뤼의 등급을 받은 샤또는 마르고 마을이 21개로 가장 많으며, 뽀이약이 18개, 생-떼스떼프가 5개 순이다. 이 6개 마을은 오메독 지역 중에서도 토양이나 기후 등 제반 여건이 포도재배에 가장 이상적인 곳으로 그만큼 좋은 와인을 생산한다.

오-메독 중 이 6개 마을 이외에서 재배된 포도를 원료로 제조된 와인의 라벨에는 AOC의 O자리에 오 메독이 원산지로 표시된다. 화이트와인은 메독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메독’의 표시를 할 수 없다. 보다 넓은 ‘보르도’로 표시되어 판매되고 있다. 원래 메독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의 양은 아주 적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2012라는 빈티지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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