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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유봉지심(有篷之心)"

<<장자>>의 제1장 "소요유"에 나오는 말이다. "송나라 사람이 머리 두건을 팔려고 원나라에 갔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해서 머리 두건을 쓸 일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 다 두건 두르고 살겠 거니 싶어서 월나라에 가서 두건을 팔려고 했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이미 다른 해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시장 조사도 안 하고 쉼 없이 뛰어들었으면 장사 망하는 건 당연하다. 이 송나라 사람처럼 자기 장사만 망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런 사람들이 꼭 남들까지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선 자리에서 꼼 짝도 하지 않으려 하니까 '다른 수가 없다'는 답답한 소리나 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리는 유리병을 갖고 계속 왼쪽으로만 돌리다가 '에잇, 이거 안 열리면 불량품이다' 하고는 갖다 버리는 것과 같다. 당기면 열리는 문을 계속 밀기만 하다가 갇혔다고 징징 우는 꼴이다. 장자는 이런 사람을 "유봉지심(有篷之心)"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 하면, "쑥 무더기 같은 마음"이다. 장님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환한 세상도 보지 못한다. 세상에 빛이 없어 서가 아니다. 세상이 환하지가 않아 서가 아니다. 자신이 눈감고 있어서 이다. 그 눈을 뜨기를 거부하는 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온 정답 마저도 거부하고 제 고집만 피우는 모습을 나는 주변에서 가끔 본다. 제 자리 잠깐만 옮기면 되는데, 무안함 잠깐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골프 선수들은 피팅을 하기 전에 우선 그린 전체를 본다고 한다. 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시간도 없고 우선이 돈이 없다. 그 다음은 반대쪽에서 홀 컵과 공의 위치를 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리에서 라인을 보고, 서서도 보고 않아서도 본다고 한다. 내 자리는 마지막에 서는 법이라 한다. 그러니 내 자리만 고집해서는 진실을 볼 수 없다.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그물을 늪에 감춰두고 든든하게 여긴다. 하지만 한밤중에 어떤 힘센 사람이 짊어지고 가면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나? 작은 것을 큰 것에 감추면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하지만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장자>>, "대종사")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것은, 사실 감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천하를 천하에 숨겨두면, 새삼 가져가고 말고 할 게 없다. 가져갈 수 없다.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 그러니 바꾸는 건 나 자신이다. 내 위치를 바꾸고, 내 시선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는 거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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