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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에로스와 로고스의 향연"

내가 세상을 알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 경제는 계속 위기라고 들었고, 세상은 어둡고 올해가 가장 위기라고 했었다. 그래 그걸 믿고 올해만 넘기면 괜찮을 줄 알고, 계속 참았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하다. 언제부터 우리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화폐와 노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출구를 찾아 본다.

고미숙은, 노동과 화폐로부터 탈출 하려면, 자연, 생명 그리고 우리의 몸 같은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오늘날 권력과 부와 상상력과 지성과 문화생활을 조직하고 독점하려는 기관들은 다음과 같은 세 종류의 분리 혹은 고립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사람을 그 육체, 즉 몸과 장소와 시(詩)로부터 떼어 놓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조금만 되돌아 보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1) 육체의 연장(延長)이라 할 수 있는 도구 생활자인 우리는 몸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근대적 지각과 운동 양식에 갇혀 있을수록 직접적 감각 체험으로 부터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2) 우리 몸이 머무는 일상의 자리, 곧 장소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장소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소외라는 말은 장소와 소통하거나 서로 교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일상을 벗어나곤 한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그 장소가 갖는 이야기와 기억들과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내면이 빈곤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골목이 사라졌다. 누추하지만 각박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얼굴 빛 환하고, 삶이 고달파도 어울릴 줄 알았던 그 세계가 사라졌다. 김기석 목사의 <일상의 순례자>라는 책에서 만난 이야기들이다. 김기석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음의 장벽을 자꾸만 높이며 살아가는 부박하고 희떠운 삶은 결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세상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3) 세 번째로, 근대적 삶은 우리에게서 시를 빼앗아 갔다. 우리가 정신적 어둠 속을 방황하는 것은 시인들이 언어의 올가미로 낚아챈 영원의 순간에 우리 일상을 비춰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 고미숙의 유튜브 강의 "에로스와 로고스의 향연"을 들었던 것이다. 고미숙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몸은 외모하고 수치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치는 몸무게나 키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늘 그 몸매를 조이고 사람들에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도구화 되고 있다.

나는 헤르만 헤세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좋아한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천직)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 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산다는 것은 "나를 행해 쉼 없이 걷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으면서 숙고하는 일이다. 무엇을 숙고하는가? 바람직한 일보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담론을 바꾸어야 한다. 이젠 자연, 생명, 우리의 몸, 우리의 무의식,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삼을 때 그곳에 어떤 지도가 그려지는지를 봐야 한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살지 않는다. 어디를 가도 시간과 공간이 다 사계절로 펼쳐진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사계절이라면 인생도 사계절이다. 청춘, 중년, 장년, 노년, 이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청춘(靑春)들이 무기력하다. 청춘에는 봄 춘(春)자 들어간다. 봄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온갖 초목들이 막 솟아오르는 스프링(spring)이다. 변화를 바라는 봄의 생명력을 우리는 에로스라고 한다. 이 에로스가 동력(動力)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청년들은 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고미숙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원인이라 생각한다.
(1) 제도, 즉 규제가 너무 많다. 청춘들을 과도하게 어린이 취급한다.
(2) 서비스와 케어가 또 지나치다. 너무 많은 것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돈만 가지고 가면, 어디나 그냥 막 흥청망청 쓰라고 유혹한다. 소비를 창피하지 않게 한다.

우리 청춘들은 (1)과 (2)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힘들어 한다. 학교에선 스트레스가 엄청 쌓이고 인터넷이나 TV를 보면 상품들이 엄청 유혹한다. 예를 들어, 몇 개월 알바로 돈을 모았다가 한 방에 지르는 변태에서, 돈이 떨어지면 삶을 지루해 하는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상황으로는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은 능동적으로 사는 일이다. 수동적이지 않고, 자율적이여야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아닌 사람은 ㅣ그냥 열심히 앞만 보고 사는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고미숙은 이런 사람을 '좀비'라 부른다. 좀비는 몸을 잘 못 움직이지만 열심히 앞으로 가고, 또 구강 구조가 발달해서 먹고 물어뜯는 데 강하다. 그러다 보니, 청춘의 에로스가 침묵하고 있다. 청춘으로 못 살며 무기력하고 공허해 하는 것이다.

에로스와 로고스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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