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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문장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 이것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한 주는 갑작스러운 박원순 서울 시장의 죽음과 이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MeToo 기자회견과 공방들을 보면서, 나는 우울하면서 혼란스러웠다.

1. 개인적으로 조금 알고 있는 박선화 교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균형을 찾았다. 내가 내 마음대로 교수님의 의견을 왜곡했다면 용서를 구한다.
- "말귀가 밝다."는 말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말 귀가 밝아야 말이 잘 통한다. 척하면 알아듣는 것이다. 나는『주역』에 나오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래 가려면 통해야 한다. 통하려면 귀가 밝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맞추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잘 들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소통이 잘된다고 말한다. 그 소통에서 통하려면 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가 틈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틈을 벌려야 한다. 네 속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 결점까지. 말귀가 밝으려면 상대가 말하는 단어를 보지 말고 맥락을 보아야 한다. 맥락을 영어 context라 한다. 그러나 언뜻 잘 못하다 가는 양비론을 빠진다. 그러지 말고 박선화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다 초점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내 안경도 다초점이다. 고개를 들면 돋보기가 되고, 고개를 좀 숙이면 근시 안경이 된다. 먼 곳이 잘 보인다. 생각도 다 초점이면 생각의 중심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자 사람의 입장으로 옮겨 다니며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박선화 교수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읽고, 박시장 문제는 죽어가면서까지 이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도 생각했다. 교수님의 의도를 내가 마음대로 해석했다면 용서를 구한다.

박시장의 문제는 우리 시회가 갖고 있는 위력에 대한 인식 수준과 시스템 문제를 고발한다. 소위 피해자라는 비서의 편지를 보면, 그녀는 그저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 사과 받고 제동을 걸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본다. 그녀가 말하는 서류에 나타나지 못한 많은 힘든 시간들이란 모두 박시장만의 원인이 아니고 주변 상황들까지 얽혀 있는 것 같다. 나도 이런 상황을 겪은 경험이 있다. 그 때 박시장은 그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보다 본인 역시 상당 수준의 부담을 얹었고. 얘기를 해도 상황들은 방치되고 무시되었을 것이다. 이게 그녀가 자기결정권의 용기를 낸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그 태도를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특히 어떤 세력(?)과 공모한 듯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이나 약자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는. 이건 박시장만의 사건이 아니다. 이건 우리 모두의 사건이다. 박선화 교수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질문한다. 그 질문에 답을 하면서 사회 전체의 숙고와 자성을 자져오는 기회로 우리가 삼으면 박시장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다. 이 엄청난 문제를 풀 수 없어, 그는 스스로 명을 달리한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으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 것이다.
• 위력(威力,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력한 힘) 이란 무엇인가?
• 조직 사회에서 리더들이 해야 할 것과 자제할 것이 무엇인가?
•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 젊은 세대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마지막으로 박선화 교수의 또 다른 담벼락의 내용을 인용한다. 386 시대 청년의 시대정신은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화"였다. 지금 청년들의 시대정신은 "불공정 타도, 위력 철폐, 개인 행복 추구"이다. 이처럼 지금 세대 차이의 갈등이 불꽃 튀고 있다. 나이든 "꼰대"들의 물정 모르는 장광설과 철 없는 어린 것들에 대한 꾸중을 보는 젊은이들의 반응은 코웃음과 조롱, 혐오에 가깝다. 세대 간의 문제이다.

2. 박시장의 죽음과 함께 시민운동이 변화를 해야 한다. 박 시장 죽음 때까지 시민운동은 이랬다. "강력한 의지를 가진 사람, 혹은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가 전면에 나서 강력한 운동권 리더십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권력을 향해 사회정치적 각을 세우는 주창형 운동이었다."(한겨레 서보미 기자) 이젠 시민들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를 채워 나가는 활동을 이런 식으로 지속할 수 없다. 젠더, 기후위기, 동물권 등 새로운 어젠다를 내건 시민단체와 활동가가 생겼다. 일부는 이원 지원을 받는 소수 활동가가 여러 사업을 주도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소규모 활동가 그룹이 직접 행동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시민단체나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직업 활동가도 많지만, 학교나 직장에 다니면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른 시민들과 연대하는 비상근 활동가도 있다. 서기자의 칼럼에 인용한 20대 활동가의 다음 지적은 우리 대전에도 해당된다. 나도 5년간 시민운동을 해봐서 안다. 나도 이런 문제로 대표직을 사임했고, 박원순 식 시민운동에 마음이 떠났다. "이미 행정, 정치 권력이 된 시민운동 1세대를 넘어서야 한다. "시민사회운동 조직과 서울시가 대등한 위치가 되긴 했지만, 점점 사회운동이 하나의 서울시 사업이 되고, 시민 개인의 시정 참여를 운동조직이 지원하는 형태가 되어가는 것에 문제의식이 많았다" 며 "시장 임기가 정해져 있으니 언젠가는 결별해야 하는데, 그 시가가 (죽음으로) 조금 앞당겨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그의 죽음으로 그 시대의 변화의 흐름을 놓치면, 얼른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그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박시장이 남긴 업적은 분명히 대단하다. 조금도 부인하지 않는다.

3. 이런 눈으로 인하대 김명인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확실히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젠 우리 사회도 어느 사이인가 커다란 사회적 위업을 쌓은 저명인사의 명예와 이름 없는 한 여성의 명예에 어떤 차별도 우선순위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살아남기에 급급한 세상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화급한 과제'를 앞세운 가부장적 위세와 그것을 보장하는 모든 시스템들은 이제 전면적으로 성찰 되고 폐기되는 수순이 밟아져야 하며, 그것은 어쩌면 이러한 '살아남기' 식의 모든 가부장적 위계 체제의 모태인 근대적 국민국가 체제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로 이어져야 한다."

4. 주제를 바꾼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님의 또 다른 죽음을 기억한다. 이문재 시인의 칼럼 일부를 공유한다. "그분은 그야말로 다면체였습니다. 학자, 비평가, 교육자, 사상가, 실천가, 편집자. 관심의 폭이 광범위했을 뿐만 아니라 그 각도가 예리했고 심도 또한 깊었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한두 마디로 압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선생님께선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이고 심층적인가?' 저는 이를 ‘장포심’이라고 줄여서 뇌 한가운데에다 모셔 놓고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 세 가지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장포심'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본질을 두루 아우릅니다. 저는 이 중에서도 심층적인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본과 연결된 것만이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결과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에 가 닿는 것만이 그 과정 또한 윤리적이고 미학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인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그리하여 근대문명의 폭력성을 넘어 땅에 기반한 공생공락(共生共樂) 사회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면, 선생님을 보내 드리는 이 시간이 이토록 애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 함께 공유하는 밴드에서 잘 모르는 사람인데, 좋은 이야기를 올린다. 그 것들 중에서 지난 주는 이게 눈에 들어왔다. 요약해 본다.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는 해리 이버만은 여든 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백 한 살에 스물 두 번째 개인전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103세가되어 세상을 떠났다. 마치 호서대학교를 설립한 고 강석규 박사와 같다. 어디선가 읽은 적 있지만, 그의 말을 다시 필사 해본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이잰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강석규, <어느95세 어른의 수기>)

저마다 인생의 도화지 한 장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도화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흥미가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는 우리 인생에 찾아 올 기회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위의 삶이 행복하고 보람 있으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를 찾아,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올리려는 매일매일의 수련 속에 있어야 한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자신의 식구만 먹고 살던 시몬에게 예수가 말했다. '깊은 곳으로 가라!' 이 말을 풀어 쓰면, '당신은 최선이 발휘되는 가장 깊은 심연으로 자신을 몰아 넣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다. 시몬은 그 질문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여, 깊은 곳으로 가자, 그는 베드루가 되었다." 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언젠가 적었던 내용이다. 다음 한 주도 나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를 찾아,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올리려는 매일매일의 수련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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