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게 있다. 비록 이겼지만 그 자체가 오히려 재앙인 경우이다. 피로스(Phrrhus)는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의 한 왕이었다. 역사가들은 그를 알렉산더 대왕에 비교할 만한 인물로 다룬다. 기원전 297년 피로스는 2만 5000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군대의 3분의 1 이상을 잃었다. 그는 승전을 축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한다. "슬프다. 이런 승리를 한 번 더 거두었다간 우리는 망하고 만다." 이것이 피로스의 승리이다. 상처 뿐인 승리라는 뜻으로, 1885년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처음 사용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로스의 군대는 비록 이겼으나 그 피해가 너무 커서 예전의 상태로 재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로마인들은 그런 허점을 노리고 즉시 후속 군대를 파병했다. 계속 이어지는 전쟁으로 피로에 지친 피로스의 군대는 하나씩 무너져 갔다. 결국 피로스는 기원전 272년 스파르타를 점령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다가 아르고스에서 전사했다.
한번은 그 피토스가 로마 출정을 앞두고 최측근 참모 키네아스와 마주 앉았다. 피로스 자신이 "내가 힘으로 빼앗은 것보다 키네아스가 혀로 얻은 땅이 더 많다."고 평가한 인물이다. 빼어난 연설 솜씨로 점령지의 민심을 얻어 전투로 빼앗은 땅을 명실상부한 영토로 바꾸는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역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귀재였던 같다.
키네아스가 물었다. "장군님, 이번에 로마에 출정해서 승리를 거두면 그 다음엔 뭘 하실 건가요?" 피로스가 대답했다. "그 다음엔 이탈리아이지!" 키네아스는 다시 물었다. "이탈리아도 정복 하면요?" "그 다음엔 시칠리아가 기다리고 있지." "그럼 시칠리아까지 정복하고 나면 전쟁을 끝나겠네요?" "아니지, 그 다음엔 지중해를 건너서 카르타고로 가야지." 이 말을 들은 키네아스는 감동한 듯 말했다. "아 그럼 세계를 정복하는 거네요?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뭘 하실 건가요?" 피로스는 만족한 듯 대답했다. "그때는 편히 쉬어야지. 날마다 마시고 놀고, 내가 싸움에서 이긴 신나는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야지."
드디어 원하는 답을 얻은 키네아스는 마침내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장군님. 편하게 쉬는 거라면 지금도 할 수 있지 않나요? 장군이 싸움에서 이긴 무용담은 지금도 매일 밤을 새면서 해도 모자라지 않는 걸요? 그런데 왜 로마를 쳐부수고,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카르타고까지 건너가야 하죠?"
피로스의 치명적인 약점이 자신이 왜 싸우는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왜 싸우는지 모르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는 지는 상처뿐인 영광, '피로스의 승리' 밖에 거두지 못한다. 편히 쉬기 위해서 하는 싸움이라면 싸움을 하지 않는 편이 더 편히 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산다. 자기 눈 앞만 보고,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을 보지 못하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피로스는 키네아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끝내 로마 원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몰락을 자초했다.
진실은 가까이에 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마치 발에 너무 잘 맞는 신발처럼, 평소에는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미 잘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면서 자꾸만 남의 신발만 탐을 낸다. 그게 더 눈에 띄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보면 내 발에 이미 너무나도 잘 맞는 신발이 신겨져 있다. 중요한 건 내 신발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발을 잊는 것은 신발이 딱 맞기 때문이다. 주변에 딱 맞는 것들이 많은데, 그 가치를 못 알아본다.
발을 잊게 하는 신발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잊게 하는 지금-여기 그리고 나를 사랑하며, 평범하고 시시하게 오늘을 살고 싶다. 어느 성공한 어느 컨설턴트가 한 휴양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곁에는 마을 어부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컨설턴트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좀 더 열심히 하면 훨씬 성과가 좋을 텐데요." 나 에게도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부는 컨설턴트에게 되물었다. "성과가 좋으면 뭐가 좋은데요?" 컨설턴트는 한심한 듯 대답했다. "성과가 좋으면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벌어 투자하고 벌만큼 벌면…" 어부가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 다음에는 요?" 컨설턴트는 무식하다는 듯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다음에는 좋은 곳에 가서 쉬면서 사는 거지요." 어부가 말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나도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그 어부처럼 그리고 곁에 소중하게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
지난 글들은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피로스의승리
'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금기 깨기>> (0) | 2022.07.19 |
---|---|
1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것 입니다. (0) | 2022.07.19 |
이탈리아의 베네또(Venetto) 지역 와인 (0) | 2022.07.18 |
"코로나-19의 역설이 주는 새로운 디지털의 길" (0) | 2022.07.17 |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0) | 2022.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