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가만히 응시할 수 없을 때, 나도 모르게 내면에 쌓이는 적폐가 바로 자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여러 의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착각을 한다. 우리는 자신을 깨우치는 공부를 통해서만 자만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피하는 길이 자신의 제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비극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은 아는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만 모른다. 그것이 자만이다. '위대한 개인'은, 남들이 보기에 소위 스펙이 좋은 인간이 아니라, 흠모하는 자신을 소유한 인간이며, 그런 인간을 위해 매일 매일 지금-여기서 연습하는, 아니 훈련하는 인간이다.
스펙이 좋은 인간들은 대부분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인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력, 경제력, 권력 등을 남들과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자신과 자신의 식구를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런 사람에겐 매력이 없다. 진부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매력이, 자신이 가진 보물을 남들과 함께 나눌 때,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매력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것이다. 그래 매력이라는 말은 '아우라' 혹은 '카리스마'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건 흔히 보는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들 속에 있더라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빛나게 하는 그 무엇이다. '도깨비'처럼 이끌리는 힘이다. 그런 매력을 가지려면, 일상의 삶에서 어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한 번은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진리나 상식은 보통 인간들에게는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오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외부의 자극을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범주에 귀속시킨다고 했다. 이 '공통적인 감각'을 우리는 '상식(common sense)'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상식이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이것마저 왜곡된다. 상식을 '교리(敎理)'로 대치시키고, 그걸 상식이며 진리라고 강요한다.
교조적인 교리에 빠져 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상식과 진리 속에서 나를 '구별된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신을 일상의 습관, 특히 식습관을 장악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구별한다. (1) 마시는 음료 (2) 헤어스타일 (3) 만남을 구별한다. 첫째, 와인, 식초, 건포도가 들어간 음식과 술을 삼간다. 두번째, 머리 미용을 포기하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3) 시체가 있는 곳이나 무덤에 가지 않는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치장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발로 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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