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여성을 동상으로 제작할 수 있다. 50년 전만 해도 여성 동성 제작은 거부당했다. 도덕적 진보의 결과이고, 인권의 문제이다. 모든 사람에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갖기 까지 우리는 편견을 극복해야 했다. 더 나아가 그것들과 투쟁해야 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인간처럼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동물을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현대화된 공장에서 학대하다가 맛을 위해 고통스럽게 죽인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자 김경집의 다음과 지적은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지점이다. 물론 모든 게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법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는 폭이 커지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 1918년 2월,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면 남성의 권위와 권력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뉴질랜드 10달러 지폐에 있는 얼굴의 주인공은 여성운동가 캐서린 셰퍼드다. 여성에게 가장 먼저 선거권을 보장한 뉴질랜드답다. 정작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1946년이었고 스위스는 무려 1971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 1955년 12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지시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분노했고 382일 동안 버스 승차를 거부했다. 그녀는 직장을 잃었고 남편도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로자 파크스는 타협하지 않고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각지를 돌며 연설했다. 버스 보이콧은 인종 분리에 저항하는 큰 규모로 번졌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참여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과 권익을 개선하라는 미국 시민권 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많은 백인들도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1990년 로자 파크스는 미 행정부가 헌정할 수 있는 최고 예우인 대통령자유메달을 받았고 2005년 사망했을 때 여성으로는 처음으로(흑인으로는 두 번째) 미국 의회 캐피탈 힐에 안장되었다. 그녀를 ‘건방진 흑인 여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 가치는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피 흘리고 싸웠으며 편견과 왜곡을 이겨낸 결과물이다. 그들은 그 시대에 예외 없이 ‘위험하고 분수를 모르는’ 부적격자거나 과격한 진보주의자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외침과 투쟁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세상은 그들의 주장을 따라 변화했다. 어제의 급진은 오늘의 진보, 오늘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가 된다. 성숙한 보수라면 역사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무조건 반대와 거부가 능사가 아니다. (김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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