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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꼰대 이야기> (2)


어른은 꼰대와는 다르다. 꼰대는 과거에 갇혀 있다면, 어른은 미래를 향해 있다. 꼰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며 장광설만 늘어놓고 실천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른은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을 해야 하는데, 꼰대일수록 'doing'을 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배우는 것이 어른으로 존경받는 비법이다. 과거의 영광, 기억에 머물러 있으면 '옛날 타령'만 하게 된다.

그리고 '문해력(文解力)', 리터러시(literacy)가 부족하면 '꼰대'가 되기 싶다. 공부를 위해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잘 읽어야 한다. 텍스트를 정밀하게 문해(close reading)하려면, 기본적인 문해력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알아보게끔 문장의 표층으로 드러나 있는 의미 뿐 아니라, 문장의 음지에 숨어 있는 의미까지 포착하려면 남다른 집중력과 훈련된 감식안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텍스트 정밀 문해(文解)의 관건은 그런 독해를 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텍스트 '정밀 문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훈련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만나 그와 더불어 상당 기간 동안 함께 텍스트를 읽어 가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열고 단련해야 한다. 처음에 텍스트를 접하고 느꼈던 난감함을 경험해야 그 다음에 텍스트를 좀 더 섬세하게 읽을 수 있는 감수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아는가(끄세즈, que sais-je)'라며 자신을 성찰하고, 열린 마음을 갖추는 것이다.

얼어 붙은 감수성이 전자레인지에 넣어 쉽게 해동(解凍)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다. 텍스트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배움의 과정은 종종 더디고 괴롭다. 문법이나 단어를 알고 있어도, 숨어 있는 텍스트의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과거라는 현상 유지의 단계에서 미래라는 자신이 열망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배움은 과거의 자신에게 안주하려는 이기심과의 체계적인 싸움이며, 더 나은 자신(more than I can be)을 만들기 위해 자기 혁신을 위한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감동하려는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 현재에 몰입한다. 그런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수련(修練)이 한자로 말하면 학습(學習)이다. 학습이란 단어를 잘 보면, 배움(學)이란 습관(習)이다. 어미 새의 비행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목격한 어린 새는 스스로 날개를 퍼덕이며 비행을 스스로 연습해야 비로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배움의 실질적인 행위로 보강되지 않는다면, 그런 배움은 거짓이다.

작년에 중앙일보에서 장은수라는 분의 칼럼을 읽고 적어 둔 것을 찾았다. 타이틀은. "문해력(文解力) 떨어질수록 실업자 전락 높다"이다. 그 칼럼은 주장한다.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더 질 좋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다. '생활의 질'의 격차도 이로부터 시작된다. 젊은 시절에 일정한 문해력을 갖추었다 해서 평생 유지되지 않는다. 단순한 텍스트를 읽는 수준은 어릴 때 학습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이에 따른 성숙에 알맞게 필요한 정보의 양과 질을 확충하는 일이나 시대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학교 공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꾸준한 학습을 통해 자기가 알고 실천하는 일들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문해력은 서서히 바닥까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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