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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호사분면>

9년 전 오늘 글이에요.

<호사분면>이라는 재밌는 그림을 본적이 있다.

친절함-싸가지 없음이라는 한 축과, 일 잘함 – 일 못함이라는 또 다른 축을 기준으로 사분면을 만들어 놓고, 일도 잘하면서 친절하면 “호인”, 일은 잘 하되 싸가지가 없으면 “호랭이”, 일은 못하면서 친절하기만 하면 “호구”, 그리고 일도 못하면서 싸가지까지 없으면 "호로새끼”라고 구분해놓은 내용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심리학 연구 결과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개인이 되었든, 조직이 되었든 사람을 평가할 때는 기본적으로 Competence (유능성)과 Warmth (따뜻함)이라는 두 차원을 이용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집단 간 고정 관념도 대체로 이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다. 성 고정 관념은 여성은 따뜻하지만 능력은 떨어지는 존재로, 남성은 능력은 있으나 차가운 존재로 규정한다. 유태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유태인은 능력은 있지만 차가운 존재로 규정한다. 둘 다 갖춘 집단은??? 물론 내가 속한 집단이다. 우리 집단은 항상 따뜻하면서 능력까지 겸비한 집단이다!!

흥미 있는 점은 사람들은 행복의 문제를 친절함 혹은 따뜻함만의 차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호랭이보다는 호구가 낫다는 식의 생각이다. 그러나 일을 망치고 나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해하는 호구보다는 일을 망치지 않는 호랭이가 적어도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훨씬 좋을 수가 있다.

행복은 “무능하지만 착한 사람”을 지향하지 않는다. 특히나 자신의 무능을 자신의 착함으로 상쇄하려는 패턴을 습관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사람을 지향하지 않는다. 도덕성과 인성이 행복에 중요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지향하는 삶을 위해서는 실수한 후에 사과하는 마음보다 처음부터 실수하지 않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치명적 실수를 한 후에 타인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 타인에게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때로는 용서를 구하는 착한 행동이 상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일처리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과 함께 (아니 읽지 말고), 실제로 자기를 계발해야 한다.  
  
행복이 유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착한 행복만큼이나 똑똑한 행복도 중요하다. 이석원의 글에 등장하는 “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랑 고백처럼 비록 차가워 보일지라도 일을 잘 하는 것이 결국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길임을 잊고 살면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