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19일)
프랑스 영화계의 문제적 인물인 알랭 들롱(Alain Delon, 우리나라에서는 알랑 드롱이라 부른 사람도 있다)의 사망 소식이 어제(18일) 전해졌다. 1935년 파리 교외에서 태어난 알랭 들롱은 4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입양 보내졌다가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생모에게 돌아와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보수적인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6번이나 퇴학을 당하는 등 반항적인 10대를 보내며 성장했다. 열 네살의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푸줏간에서 일하다가 해군에 자원입대 해 인도차이나 전쟁에 파병되기도 했다. 군대에서도 부대 차를 훔쳐 탈영해 11개월간 감옥에 갇히는 등 문제를 일으키다가 1956년 불명예 제대하고 파리로 돌아왔다. 이후 술집 웨이터와 세일즈맨 등을 전전하던 그는 젊은 배우들과 어울리면서 칸국제영화제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미국의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 눈에 띄며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셀즈닉과 함께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하던 그는 이브 알레그레 감독을 만나면서 <여자가 다가올 때>로 1957년 프랑스에서 데뷔했고 이후에도 주로 프랑스 영화에 출연하며 이력을 쌓아 나갔다.
이러한 알랭 들롱은 잦은 결혼과 이혼 생활로도 유명했다. 1958년 동료 배우 로미 슈나이더와 결혼했고 이후 1963년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이듬해 나탈리 드롱과 재혼해 첫째 아들 앙토니 들롱을 낳았다. 나탈리 드롱과 1969년 이혼 후 미레유 다르크와 1968년 세 번째 결혼, 1983년 다시 이혼했다. 1987년부터 2001년까지 연인으로 지낸 로잘리 판 브레멘과 1987년 네 번째 결혼해 그 사이에서 딸 아누슈카 들롱, 차남 알랭파비앙 들롱을 얻었다. 노년의 삶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알랭 들롱은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안락사가 가능한 스위스에서 머물며 삶을 정리했었다.
세 번째 출연작인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60)는 알랭 들롱을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부잣집 친구를 죽인 뒤 그의 행세를 하는 톰 리플리역을 통해 그는 부드러운 얼굴 속에 소시오패스적 욕망을 숨긴 이중적인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아름다운 외모 속에 비열한 욕망이나 잔인한 본성을 숨긴 이중적인 이미지는 이후 출연 작들에서 계속 변주되면서 알랭 들롱의 꼬리표처럼 새겨졌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에세이 <남자들에게>에서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며 “알랭 들롱은 미남이다. (…)그러나 그 미는 하층계급 남자의 것이다. 그런 만큼 밑바닥 인생을 연기할 때 그의 매력이 살아난다”고 썼다.
거장 감독들과 걸작 영화를 다수 찍었지만 그 자신은 중년이 될 때까지 주요한 연기상을 받지는 못해 지나치게 뛰어난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저평가된 배우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1980년대에 직접 영화 연출에 나서기도 했지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1990년 프랑스 정부는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고, 2019년 칸영화제는 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시상했다.
그의 성공작은 <태양은 가득히>(1960년)이다.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지만 계층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두 청년의 사랑과 일탈을 담은 영화 이다. 가난한 청년이 부자인 친구 행세를 하는 이른바 '리플리 증후군(Refley syndrome)'을 다룬 영화로서 미국에서 <리플리’(1999년)>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톰 리플레 역으로 데뷔해 세계적 스타로 올라선 배우가 프랑스의 알랭 들롱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리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그냥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증후군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만을 진실로 믿으며 상습적으로 거짓의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 사회적 인격 장애이다.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 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 달리,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다. 나를 위해 나를 속이는 거다.
이 말은 1955년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연작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1960년에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1999년 작 <리플리> 역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이 문제를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리플리 증후군'은 거짓말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속임으로써 자신이 얻게 되는 이득을 목적으로 하고 반복된 거짓말이 대개 심리적 불안과 죄책감을 야기하는 반면, 리플리 증후군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인 것처럼 믿게 되는 정신적 증상으로, 보통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룰 수 없는 상위의 영역이나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을 사람들은 '환상 거짓말' 혹은 '병적 거짓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나는 '허언증' 환자라 보기도 한다. '허언증' 환자도 자신이 한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믿어 버린다.
전문가들은 이 증후군의 원인을 자기애의 손상, 열등감, 과도한 성취욕으로 본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스스로의 높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에 피해 의식을 가지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denial)하고 자신만의 허구 세계(fantasy)를 창조한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본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해온 신분, 인품, 능력을 만들어 내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왜 그럴까? 허구의 세계 속에서 성취감과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며 치료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SNS 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리플리 증후군이 나타나기 쉽다. SNS상에서는 행복한 일만 생기고 걱정없이 사는 것처럼 가면을 쓴다. 물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을 포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현실과 그 욕구가 만든 자신과의 괴리가 커지면 자아를 잃고 하나의 정신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SNS자체가 리플리 증후군을 만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자아가 강하지 않고 상대적 박탈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SNS에 의존하게 되면 허구세계를 만들어 리플리 증후군을 겪기 쉽다.
그런 경우 SNS를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나는 누구인 가'를 묻는 고독한 묵상이 필요하다. 그 고독의 힘으로 강한 자아를 길러야 한다. 여기서 인문운동가의 역할이 커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심한 '편 가르기'를 앓으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것도, 우리가 '강한 자아'를 가진 시민으로 만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강한 자아를 가진 자는 어디서나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이다. 이런 강한 자아를 갖자는 것이 나의 인문 운동이다. 강한 자아는 공부하고 익혀야 한다.
알랭 들롱의 세 자녀는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건강 악화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그 소식을 알린 자로 그의 반려견 이름 루보도 올린 점이다. 세 자녀 알랭 파비앙, 아누슈카, 앤서니와 반려견 루보가 "아버지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며 도쉬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구체적인 사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알랭 들롱은 83살에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건강이 악화하자 안락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알랭 들롱의 사망이 안락사의 결과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의 추모사들을 들어 본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채울 수 없는 큰 공백 남겼다. 알랭 들롱은 프랑스의 '프레스티지 시네마'를 대표했고 우아함, 재능, 미의 대사(ambassador)였다"며 "나는 친구이자, 분신이자, 동반자를 잃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알랭 들롱과 1963년 영화 '레오파드'에 함께 출연한 이탈리아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영화 속 알랭 들롱의 역할을 언급하며 "탄크레디가 별들과 함께 춤을 추러 올라갔다"고 말했다.
알랭 들롱은 얼마 전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거였다. 그는 스스로 안락사를 요청하고 가족도 이에 동의했다는 거다. 알랭 들롱은 이미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안락사는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2019년 뇌졸중 수술을 받은 그는 현재 스위스에 거주 중이었다. 스위스는 프랑스와 달리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이다. 그가 어제 88세의 나이로 죽었다. 보도에 의하면, 안락사는 아니었던 것 같고,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에서 죽었다. 보도에 의하면, 프랑스 현지 시각 기준 17일에서 18일 넘어가는 새벽 프랑스 오를레앙이 주 수도인 루아레(Loiret) 주 두쉬에 위치한 자택에서 사망했다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음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최근 하나의 권리로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서유럽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된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더 이상 연명 치료 없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며 사망에 이르는 것을 존엄사(尊嚴死)라고도 한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과 같은 치료를 받지 않지만, 통증 완화 치료와 함께 영양분 물 산소 등은 공급받는다. 환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하기도 한다.
웰다잉(well dying)을 추구하는 풍조와 함께 죽음을 대하는 태도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이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누적)는 121만 건이 넘는다. 환자가 보조적 완화 치료를 받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의미 있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거다. 인간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의료적 오판의 가능성과 악용 가능성이 우려되기도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로 인해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거나 안락사로 위장한 살인 범죄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락사 찬반 논쟁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의 선택을 계기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죽음 또는 우화/오규원
죽음은 버스를 타러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나는 할 일이 많아
죽음은 쉽게
택시를 탄 이유를 찾았다
죽음은 일을 하다가 일보다
우선 한잔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기 전에 한잔하고
한잔하다가 취하면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죽음은 쉽게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이유를 찾았다
술을 한잔하다가 죽음은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것도
귀찮아서
내일 생각해보기로 한 생각도
그만두기로 했다
술이 약간 된 죽음은
집에 와서 TV를 켜놓고
내일은 주말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제일이지-
죽음은 자기 말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그래, 신문에도 그렇게 났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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