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참나'를 찾는 여행
화서란 말이 있다.
꽃이 줄기에 달리는 방식으로, '꽃차례'라고 한다.
이성복 시인의 시 창작론 책 이름이 <무한화서>이다.
화서, 즉 꽃차례는 두 가지란다. '유한화서와 무한화서'
'유한화서'는 성장이제한되며 위에서 아래로, 속에서 밖으로 꽃이 핀다.
'무한화서'는 성장이 제한이 없이 밑에서 위로, 밖에서 속으로 꽃이 핀다.
'유한화서'는 원심성, '무한화서'는 구심성을 보인다.
이성복 시인은 말한다.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는 '무한화서'이다."
사실 인간의 욕망은 원심력의 속성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본성은 중력(구심성)의 속성이 있다.
그래서 욕망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려 한다. 원심력을 타고 자신의 본성을 이탈하려는 욕망을 중심 쪽으로 끌어내리려고 절제하는 태도가 검소함이다.
재미있게도 무한화서는 밖에서 속으로 꽃을 피우며, 제한 없이 맡에서 위로 성장하며 무한으로 나아간다.
인간도 검소하며, 늘 내면을 성찰하는 사람이 무한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한발짝 사유를 다 끌고 가보자.
원심력이란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높아지려한다. 이데올로기, 이념에 그런 원심력이 있다. 그래서 계속 높아지려고 한다. 그래서 이념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선명성 경쟁을 한다. 그러니까가 이념의 세계에서는 광신도와 맹목적 수호자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원심력으로 이념이 높아지면 그만큼 자기 자신과 거리가 멀어지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가 아니라 우리로 살기 때문이다. 나가 아닌 우리라는 집단은 느낌이 없고, 이성만 지배한다.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율과 계산만 있다. 느끼는 나가 있어야 행복이 시작된다.
무한화서의 꽃들처럼,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구심성'을 잃지 말아야, 역설적으로 무한으로 나아가며 시인처럼 행복할 수 있다.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도 이젠 지나친 소비주의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0) | 2024.08.14 |
---|---|
우리는 노력 없이 배우고 싶어 한다. (0) | 2024.08.14 |
한표 생각: 단순 노화(aging)와 노쇠(frailty)는 다르다. (0) | 2024.08.13 |
하나가 필요할 때는 그 하나만을 가져야 한다. (0) | 2024.08.13 |
'위대한 개인'되기 프로젝트 (14) (0) | 2024.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