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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위대한 개인' 되기 프로젝트 (13)

7년 전 오늘 글이에요.
'참나'를 찾는 여행

배철한 교수의 <심연>을 읽으며, '위대한 개인' 되기 프로젝트 (13)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든다."

관찰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이다.

'본다'는 행위는 세 가지가 있다.
(1) 그져 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 습관과 편견대로, 또는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보는 행위이다.  
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즉각적이고 수동적인 시각적 반응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보는 행위에는 대상이 없다. 이 행위는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내 안목에서 비롯한다. 안목이 시선의 높이이다. 결국 그저 보는 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행위에 불과하다.

보이는 것만 보는 이런 시선이 고착화되는 것을 '무식'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놓은 허상 속에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허상과 실제 대상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남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사리 폭력을 행사한다.
일상에서 자주 화를 내고 폭력적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  살펴보는 것이다. 이 행위에는 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 행위에는 주체도 있고 객체도 있다. 나의 보려는 행위가 의도적이며 그 대상이 확실할 때 우리는 '살펴본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공부할 때의 경우이다.
'살펴보는' 행위의 주체로서 우리는 보고 싶은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기도 하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살펴보는 행위에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살펴보는 것'은 약간의 주의와 노력만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행위이므로 여기에는 변화와 혁신에 필요한 에너지가 개입되거나 발휘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3) 관찰이다. 관찰은 깊이 보는 행위이며, 이것의 특징은 무아성이다. 특히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의도를 갖고 볼 뿐만 아니라 그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그 움직이는 모습을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집중하고 몰입한다. 관찰이란 가시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안보이는 것을 보는' 행위이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뇌와 눈을 훈련해왔다. 하지만 그 대상의 배후에 있는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관습과 편견의 시선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져 보기' 때문이다. 오래 관찰하여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집중과 몰입, 꾸준함과 인내 그리고 "잠자고 있던 원시적 감각"을 키워야 한다.

페북 친구(배일동)의 사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