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문장과 함께 서양은 근대(모던, Morden)가 시작된다. '생각하는 나'는 진리를 체현(體現)하고, 그 진리의 실현을 위해 꾸준히 나아간다.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이고, 이 합리적인 생각이 인류를 자유롭게 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 존재의 전제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나'에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 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누눈가에 의해 생각 당하는 존재라면 어떻게 되는가?
미셸 푸코부터 문제를 삼다가, 포스트모던이즘은 생각하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근본적인 진리에 도달했고, 이 진리를 기반으로 상식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의심한다. 포스트모던이즘은 "권력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 당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필링의 인문학이 시작된다. 필링의 인문학은 생각을 지배하는 모든 권력, 구조, 자본주의의 관계를 문제 삼아 내가 진짜 생각하는 지를 성찰하는 것이다. 필링의 인문학은 실존적 나가 생각 당하는 나인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성찰하는 나'가 '필링하는 나'라고 주장한다.
필링의 인문학은 나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각하는 나인가, 생각 당하는 나인가, 이 질문을 하면서 내 생각의 제작자를 찾아내 맞서자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나는 행복한가라고 현실을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실존적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한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은 나와 공동체를 만나 그 원인을 파헤친다.
사실 생각 당하는 나는 어두운 세상의 뒤안길에서 행복하지 못하다. 실존적인 나는 생각 당하며 살고 있다. 필링의 인문학은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는 가라는 질문을 하며, 상상과 함께, 근거는 없지만, 희망 찾기를 시도한다.
그 희망은 우리가 각자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 매주 수요일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을 만난다. 아침 커피 모임, <대덕몽> 그리고 <대전-프랑스 인문학 팩토리>라는 이름이로 10 여명이 넘는 동네 분들과 최근에는 '리터러시(문해력)' 공부를 한다. 우리가 마중물이 되겠다는 것이다. 마중물은 혼자 힘으로는 세상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의 물이다. 필링의 인문학은 나를 지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비판이자 실천을 의미 한다. 거기서 마중물은 이 실천의 의미, 방향, 내용을 그 은유 안에 담고 있다. 방송대 유범상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듣고 정리한 것이다.
-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큰 변화를 만든다. 마중물은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모두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물이든 상관 없다. 그러려면 비판으로 깨어나 '자각한 시민'들은 비판을 공유하며 조직의 회원이 되어 '조직된 시민'을 형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조직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 마중물은 우리 가까이 어디에나 있다. 지역과 마을, 현장 곳곳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문제를 느끼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정책 입안 가와 시민 교육가가 될 수 있다.
- 마중물은 어디에나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다. 이것은 마중물이 항상 열려 있다는 말이다.
- 마중물이 버려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러니까 권력에서는 떨어지되 공동체에는 묶여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권력에 밀착해 권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詩)의 "우리동네 구자명 씨"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면서, 나는 '마중물'이 되길 모색한다. 7월 마지막 날이다. 세월 참 빠르다. 더운 날씨이지만, 목표가 있으니, 더운 줄 모르고 지낸다.
우리동네 구자명 씨
―여성사연구 5/고정희
맞벌이부부 우리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 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 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 시중든 시간이고
그래 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 속에 흔들리는 팬지 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사진하나_시 하나 #고정희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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