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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바쁜가? 물론 바쁘다.

278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19일)

우리는 바쁜가? 물론 바쁘다. 우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바쁜가? 우리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남에게 넘겨줘도 좋은 만큼 내 삶이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다음과 같은 "신뢰의 서클"에 참여하여야 한다. 여기서 서클을 공동체로 바꾸어도 된다.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이 또다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서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1등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경쟁을 하면 나 외에는 모두가 이겨야 할 적입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계신 서영남 이종 사촌형의 따뜻한 말이다.

이러한 공동체, 커뮤니티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과 특징을 지닌다.
1. 정해진 기간
2. 유능한 리더십
3. 강요하지 않는 초대
4. 공동의 근거
5. 정중한 분위기

이러한 공동체는 작은 마을에 모여 살던 낭만적인 환상을 털어버리고, 동시대의 현실을 존중하면서 '함께 하는 삶'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공동체는 사람의 인원 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홀로 됨'을 '보호하고, 접하고 인사할' 줄 아는 두 사람만 모이면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서로 영혼의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면 온전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늘 만나야 할 필요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두어 시간, 한 달에 한 번 반나절 정도, 또는 일 년에 서너 번 주말에 만나는 것도 상관 없다. 그리고 예를 들어 처음 만난 후 12개월과 같이 사전에 종료 시점을 합의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조건 덕분에 모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면 또 다시 참여할 수 있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정중하게 떠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로 제한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마치 떨어져본 적이 없는 오랜 친구들처럼 관계를 공유하면서 서로의 영혼을 존중하고, 용기를 북돋운다. 이런 가운데, 서로 영혼의 지혜에 귀 기울이며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되면, 우리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이러한 공동체를 이루는 두 번째 조건은 영혼에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칙과 실천들을 잘 숙지하고 있는 유능한 리더의 존재다. 물론 서로의 홀로 됨을 '보호하고, 접하고, 인사하는' 법을 아는 두 사람에게는 제3의 리더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공동체가 커질수록 리더를 정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 진다. "신뢰의 서클"을 이루는 규칙은 '서로 구제하려는 시도조차 하면 안 된다'이다. 그러나 문화적 인습이라는 중력이 끊임없이 우리를 그 반대쪽으로 끌어 당긴다. 즉 '서로를 구제하는 게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인 것처럼 행동한다. 오지랖을 피지 않는 거다. '오지랍'은 잘못 쓴 거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옷자락이 다른 옷을 덮는 모양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의 성격에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욜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면이 있다'라는 표현으로 '오지랖이 넓다'고 한다.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참견하고 훈수를 두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간섭하고 모든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한자로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즉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채 한다는 말이다. 프랑스어는 '즈 멍 푸(Je m'en fous)'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네 알 봐 아니다', '그건 네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의미이다. 비슷한 말로 수수방관(袖手傍觀)이다. 그 뉘앙스는 다르다고 본다. 말 그대로 하면,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말로, '관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Je m'en fous'는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주체적 결심에서 나온 말로 나는 이해했다. 살다 보면, 주변에 '오지랖 넓은' 사람 때문에 신경 쓰이는 일들이 있다.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일 말이다.

다른 사회를 경험하지 못하고, 한 사회 속에서만 살았던 사람은 자기를 비추어 볼 거울이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그동안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칠 기회가 없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기가 사는 사회는 일상이 영위되는 공간, 존재가 귀속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성숙한 사람들은 그래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있다.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을 낯설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민 낯을 그대로 비춰주고, 우리의 일그러진 모습을 낯설게 보여주는, 그런 '불편한 거울'이 있으면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 언론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나름 위로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좀 심하다.  

"신뢰의 공동체"의 두 번째 조건으로 '유능한 리더십' 이야기를 하다가 좀 다른 길로 샜다. '조건 없이 함께하는' 커뮤니티는 계속해서 보살펴야만 하는 혼란스럽고, 긴박하며, 창조적인  공간이므로 리더가 필요하다. 그러한 리더에게 필요한 권위는 권력과는 다르다. 권력은 계급이나 총 같은 강제 수잔으로 통제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권위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부여한 사람에게서만 나온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권위를 부여하는가? 낱말 자체에 단서가 있다. 우리는 말과 행동을 '스스로 창조해낸다(authoring)'고 생각하는 사람, 즉 대본으로 말하지 않고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권위를 부여한다.

"신뢰의 서클"에서 리더의 역할은 쉽게 규정된다. 즉 모임에 참여한 모든 일들의 영혼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고 보호하는 데 힘쓰는 일이다. 그러나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념, 교육, 훈련, 경험이 필요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리더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영혼의 갑옷을 벗어 던져도 아무런 해가 없다고 약속하는 데 따르는 엄숙한 책임을 이해해야 한다. 

"신뢰 공동체"를 위한 나머지 조건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로 넘긴다. 기후 위기로 우리 나라 여름 날씨가 바뀌었다. 장마라고 하는 데, 비가 오다 말다 하며, 날씨가 흐리고 습하다. 그래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매일 그날이 그날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면글면(약한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하지 말며 살아가고 싶다. 애면글면은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다. 이 말이 예쁘다. 맑은 날은 세상이 환하게 다가와서 좋고, 흐린 날은 보고 싶지 않는 것들이 조금 멀어 보여서 좋다. 그대가 날 사랑하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고, 그대가 날 외면하면 가슴에 품을 수 있어 좋다. 돈이 좀 생기면 친구에게 술 한잔 살 수 있어서 좋고, 돈 떨어지면 혼자 외상 술 마실 수 있어서 좋다. 애면글면 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 이 무덤덤한 이 나이가 이젠 좋다. 오늘은 흐리다. 그래 나희덕 시인의 <흐린 날에는> 공유한다.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오늘은 일본 노인들이 세상을 유쾌하게 담은 실버 센류(일본의 정형시 중 하나로 5-7-5의 총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 모음집을 샀다. 흐린 날씨에 웃자고 몇 가지 공유한다. 책 제목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다.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자명종 울리려면 멀었나 일어나서 기다린다." 가끔씩 공유한다. 웃자고.


흐린 날에는/나희덕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은 떨어져 나가지 않을 만큼만 바람에 몸을 뒤튼다.
저렇게 매달려서, 견디어야 하나 
구름장 터진 사이로 잠시 드는 햇살
그러나, 아, 나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다. 
큰 빛을 보아버린 두 눈은
그 빛에 멀어서 더듬거려야 하고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 
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그래야 맞다, 나부끼다 못해 
서로 뒤엉켜 찢겨지고 있는 
저 잎새의 날들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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