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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마/최옥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마로 연 이틀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해가 떴다.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해'이야기를 한다. 마침 오늘 오전은 오랜만에 『장자』 읽기가 있는 날이다. 쉬엄쉬엄 읽었는데, 벌써 제4장 '인간세'를 읽기 시작한다.

제1장 '소요유'가 변화와 초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제2장 '제물론'이 이런 변화와 초월이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와 의식에서 벗어나  '나를 잃어버린 상태(오상아吾喪我)'의 경지에 이를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면, 제3장 '양생주'는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 생활을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하게 살아가는가를 보야 주고 있다.

오늘 아침은 그 양생주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포정의 포(庖)는 '부엌'을 의미하고, 정(丁)은 그 사람의 성(姓)이거나 보통 명사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정'은 부엌데기, 요리사 혹은 요리사 정씨라는 뜻이겠지만, 구체적으로 소를 잡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백정'일 수도 있다. 백정은 옛날 동양 사회에서 가장 천한 직업이었다. 그러니까 <포정해우> 이야기는 그 사회에서 가장 천한 백정이 그 사회에서 가장 지존한 임금 앞에서 소 잡는 법을 보여주어 양생(養生)의 도를 가르쳤다는 이야기이다.

소 각 뜨는 솜씨가 명인(名人)의 경지이다. 몸 전체가 조화롭게, 자연의 리듬과 율동에 맞추어 한바탕 춤추듯이 움직이면 어느새 소의 각을 완전히 뜨게 된다. 요리 조리 재고 셈하고 하는 인위적인 기교나 행동이 전혀 아니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물처럼 흐르는 행동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움직임, 그래서 칼로 베지만 칼로 베는 것 같지 않게 베는, 말하자면 '벰이 없는 벰'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의 경지를 넘어선 '도(道)'의 경지이다. 포정이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다음의 세 단계를 거친다. 1) 눈에 소밖에 안 보이던 단계 2) 소가 소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단계 3)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神)으로 보는 단계.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든 감각 기관은 쉬고 신(神)이 나서 '신이 원하는 대로' 저절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이란 무엇인가? 신이 나서 움직이는 상태는 어떤 것인가?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날씨 꿉꿉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울어서 무엇이 될 수 없듯이/채워서 될 것 또한 없으리//우리는 모두
일 년에 한 번씩은 실컷/울어버려야 한다." 그러면 신난다.

인간은 정(精), 기(氣), 신(神)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세 가지가 비슷비슷한 말로, 정신(精神), 정기(精氣)라는 말처럼 서로 어울려 인간의 정신 작용을 뜻한다. 그러나 약간의 뉘앙스(미묘한 차이)는 있다.
▫ 정(精)이 '정력(精力)'이라고 할 때처럼 성인(成人)의 활동력을 지탱해 주는 기본적인 요인이고,
▫ 기(氣)가 '기운(氣運)'이나 '원기(元氣)'라고 할 때처럼 사람을 건강하고 힘차게 살아가게 하는 힘, 에너지라면,
▫ 신(神)은 '신난다'고 할 때처럼 사람에게 활기와 흥을 돋워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가 '기'이고, 그 에너지의 활동은 '정'이고, 그 결과로써 '신'을 얻든 데, 그 때 우리는 '신바람이 난다'고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신'이란 '하늘(天), 그리스어의 '프시케(psyche)'나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다이몬(daemon)'이나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말하는 '엘랑 비탈(elan vital)'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포정이 깨달은 단계는 이런 식이다.
▫ 처음에는 소가 소로만 보였다.
▫ 3년이 지난 후, 소사 소가 아니라 뼈와 살 등 해부학적 요소로 구성된 무엇으로 보였다.
▫ 그러다가, 그런 분석적이고 계산적인 의식(意識)에서 벗어나, 자기와 소와 칼이 불이(不二)의 상태, 완전히 합일이 된 상태, 자기를 완전히 잊은 상태, 주객을 완전히 초월한 비이분법적(非二分法的)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포정이 이렇게 자기를 완전히 잊은 일종의 황홀 상태에서 할 일을 다 한 다음에 사방을 둘러보고 평상의 의식 상태로 돌아오면, 그는 말할 수 없는 '흐뭇한 마음'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흡족해 하는 포정의 모습을 보고 임금은 "나는 오늘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뜻 깊은 인생의 '참 맛'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던 모양이다. 포정이 참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조르바의 신나는 삶, 거침이 없는 삶에 감복하여 결국 주인이 '춤추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장마/최옥

일년에 한 번은
실컷 울어버려야 했다
흐르지 못해 곪은 것들을
흘려보내야 했다
부질없이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려야 했다

눅눅한 벽에서
혼자 삭아가던 못도
한 번쯤 옮겨 앉고 싶다는
생각에 젖고

꽃들은 조용히
꽃잎을 떨구어야 할 시간

울어서 무엇이 될 수 없듯이
채워서 될 것 또한 없으리

우리는 모두
일 년에 한 번씩은 실컷
울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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