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5일)

지난 주말에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말을 접했다. 이 말은 인지 편향의 하나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과잉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반면,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과소 평가하여 열등감을 가지게 되는 효과이다.
이 말은 코넬 대학의 저스틴 크루커(Justine Kruger)와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가 1999년에 제안한 것이다. 그들은 언어적인 능력, 논리적 결론을 내릴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유머를 구사하는 감각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결과 나쁜 성적이 나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훨씬 더 과대평가 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와 실제 능력 사이의 차이가 뚜렷했다. 이와 반대로 테스트에서 성적이 잘 나온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다분했다. 세 성적이 나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도 능력이 없어 스스로의 오류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 두 교수의 이름을 따서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부른다. 그 실험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는 거다.
•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 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구글에서 다음 그래프를 보았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지식이 조금밖에 없을 때 오히려 자신감이 높게 치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식이 쌓일수록 자신감이 하락하고, 실제 역량보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구간을 지나면 그제야 조금씩 자신감이 오르는 깨달음의 오르막을 지나 전문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위 그래프를 보며, 두 사람의 말이 소환된다. 찰스 다윈의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와 버트런드 러셀의 “이 시대의 아픔 중 하나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한데, 상상력과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는 것이다”이다.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을 피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기 평가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정기적인 테스트를 통해 내 수준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자신이 부족한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가능한 것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이 모르는 것, 틀리는 것을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요약하여, 더닝 크루거 효과에 빠지지 않으려면,
• 능력 쌓기를 꾸준히 해 나간다.
• 자신의 지식을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점검한다.
•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찾아 공나아간다.
더닝 크루거 효과를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 또는 “무식하면 용감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제 막 말을 깨우친 아기가 하루 종일 옹알옹알 거리 듯 오히려 지식이 없을수록 잘난 체를 하고 근거 없는 논리를 펼치기 마련이다. 말 대신 꾸준히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노자 <<도덕경>> 제71장의 시작이 "지부자상(知不知上) 不知知病(부지지병)"이다. 이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로 풀이 된다. 이 71장은 <<도덕경>>중에서 가장 짤막한 장 중 하나다. 총 28자로 구성되어 있는 짧은 장이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280자 아니 2800자 이상이다. 간단하게 이 장의 메시지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는 거다. '알지만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공자의 <<논어>>의 <위정편>에도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짜 아는 것(知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 말이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모르는 일에 대하여 아는 척하는 것을 보고, 제자를 깨우치기 위해 공자가 한 말이라 한다. 노자는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알면서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면서 <사람 사전>을 쓴 카피라이터 정철은 '이야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은 이야기다. 들어줄 귀만 있다면 모든 사람은 이야기다. 지금 그대 곁으로 이야기가 지나가고 있다." 이야기들은 아무리 들어도 늘 새롭다. 왜냐하면 이야기들 속에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전달이 끝나자마자 효과가 소멸되는 '정보'와 달리 , 이야기는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유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 남는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어 '아는 것'을 부추기기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면 모르는 것이다. 문제는 '모르는 것'에 있지 않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 모르겠다. 소쩍새만 운다.
소쩍새 울다/이면우
저 새는 어제의 인연을 못 잊어 우는 거다
아니다, 새들은 새 만남을 위해 운다
우리 이렇게 살다가, 누구 하나 먼저 가면 잊자고
서둘러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아니다 아니다
중년 내외 두런두런 속말 주고 받던 호숫가 외딴 오두막
조팝나무 흰 등 넌지시 조선문 창호지 밝히던 밤
잊는다 소쩍 못 잊는다 소소쩍 문풍지 떨던 밤.
정말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있고,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아닐까? 왜 이게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면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 뿐만 아니라, 조금 어려운 글은 읽고 이해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나 문해력(文解力)이 더 떨어지고, 생각의 지평이 좁아진다.
우리는 모른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게 있어야 질문하게 된다. 또 질문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는 질문하길 멈춘다. 그러나 이때부터 삶의 성장도 멈춘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다. "숙고(熟考)하지 않는 삶은 살만 한 가치가 없다." 무엇을 숙고하라는 말인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우리는 성장하는 노력, 즉 배움을 시작하게 된다.
겸손한 사람은 늘 공부나 훈련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자신이 모르는 것이 뭣인지 모르거나 또는 못하는 일이 없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앞으로 알게 될 지식에 비해 미천하기에 스스로에게 겸허하고 남들에게 정중하며, 겸손하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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