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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나 명예, 부 같은 것이 아니고, 자족(自足)하며 선하게 사는 것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 아침도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본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어제는 지난 주에 이어 밭을 경운기로 흙을 고르게 만드는 '로타리 작업'를 했다. 물론 사람을 얻어 했다. 경운기가 10 마력이니 소 10마리가 끄는 힘으로 순식간에 작업을 끝냈다. 아주 늦은 오후에 시작했는데, 해가 지기 전에 끝마쳤다. 난 나에게 배당된 공간으로 만족하는데, 동료가 원하여 밭을 더 늘렸다. 나는 최근에 새로운 생각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유해동물을 막기 위해 담벼락을 치기 전에,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자고 주장한다.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도 코로나-19 위기의 주요원인을 기후변화로 본다.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1) 물 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물로 가득한 찬 행성인 지구가 온난화로 물의 순환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구가 1도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인다. 열(熱)은 구름이 지표에서 강수를 더 빨리 취하도록 몰아친다. 그래서 통제가 어려운 물난리를 겪는다. 그 거칠고 극단적인 현상 속에 가뭄과 산불도 일어난다. 미국은 2019년에 캘리포니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산불에 휩싸였다. 호주는 그 두배였다. 한국이 캘리포니아의 3분의 1 크기이니 남한 영토만큼 불에 타버렸고, 호주는 한반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규모이다. 어마어마하다. 생태계가 변화하는 물 순환을 따라 잡지못하고 붕괴하고 있다.

(2) 인간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0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14% 정도였는데, 지금은 거의 77%이다. 인간은 야생을 개발해 단일 경작지로 사용하고, 숲을 밀어버리고 소를 키워 소고기를 생산한다. 이것도 기후 변화를 유발한다.

(3)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인간들이 재난을 피해 이주하듯, 동물 뿐만 아니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재난을 피해 탈출하고 있다. 서식자기 파괴되었기 때문에 인간 곁으로 왔고,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다.

제러미 리프킨에 의하면, 앞으로 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어제 그 작업 현장을 찍은 것이다. 그리고 시는 정희성 시인의 <길>이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읽는 시이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라." 이 구절을 제일 좋아한다. 어제가 고 노무현 서거 11주년이란다. 흥미로운 문구는 노무현이 없는 노무현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내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나 명예, 부 같은 것이 아니고, 자족(自足)하며 선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세속화된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가난하지만 의롭고 선하게 산다는 것이 오히려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현실의 삶에 대한 시인의 노여움은 단지 자신의 삶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시대"를 향해 있다. 그것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유혹이 닥쳐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시인의 다짐은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고 사는 우리들에게 꾸짖음으로 울린다.

길/정희성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 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1. 고 노무현 대통령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했다는 연설 전문이다. "내가 7번 선거를 해서 네 번을 졌거든요. 그런데 대통령도 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인생은 항상 겨루기 이지만 반드시 항상 이기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니고, 진 사람도 다시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회, 그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한번 겨루기 해서 진 사람도 다음 겨루기에서 또 이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 아니겠 어요. 오늘 이기는 사람도 다음 질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은 좋지만 겸손하고 또 친구를 격려할 줄 알고, 오늘 진 사람은 다음에 또 이길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긴 친구들을 축하하고 또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서 또 이기고, 또 꼭 달리기에서 못 이기면 공놀이에서 이기고, 공놀이에서 못 이기면 착한 사람 겨루기에서 또 이기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거 아니겠 어요. 그렇죠? 그래서 이기고 지는데 너무 집착하지 말고 여러분 첫번째로 최선을 다하시고 또 첫번째로 정정당당하게 규칙을 지켜서 오늘 열심히 겨루세요.

2. 이 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동의한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박정희의 죽음과 정반대의 역사적 의미를 보였다. 박정희의 죽음이 역사를 '반동(反動)'시켰다면, 노무현의 죽음은 역사를 동(動)시킨 사건이다.

3.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책을 읽고 지식을 늘리는 학식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 지식이 늘어날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요즘 부쩍 더 넓은 의미로 와 닿는다.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해보려 하는 것, 혹시라도 내가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는 없는지 한번 더 살피고 마음을 쏟는 것. 즉,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된 책임에 가까운 ‘앎'이다. (…) 경계해야 한다. 1인분의 지식을.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경험이 늘어나지만 그것에 갇히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겪은 것이 절대적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제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가졌 어도 그것은 1인분이다. 1인분의 지식이 진리가 되는 순간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만약 ‘나 때는 말이야'를 앞세워 자신의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항상 통하기를 바란다면 존중 받기는 커녕 소외되고 말 것이다. 내가 아는 것에 갇히는 순간 더 알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그 어리석음은 경우에 따라 범죄가 되고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김혜정 작가)

4. 인문운동가인 나도 그렇다. 조심해야 한다. 혐오. 코로나19가 수그러들고, 재확산하기를 반복할 때마다 특정 계층을 향한 비난과 혐오도 마른 들에 불 번지듯 점화된다. 그 불에 데는 게 두려워 누군가는 숨거나 거짓말을 하며 바이러스를 옮긴다. 어느 확진 자는 ‘확진 자'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 사회에서 살 자신이 없다며 치료를 다 받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이민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바이러스야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잠잠해지겠지만, 누군가를 비난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를 반복하는 우리 습성을 치료할 백신과 치료제는 언제쯤 나올까? 배제하기 보다 포용하고, 혐오하기 보다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 위기는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같이 다 무너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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