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2월 26일)

<<역경>> 의 제1괘인 <건괘>의 初九에 나오는 잠룡 이야기를 한다.<건괘>에서 가장 밑에 있는 初九는 용이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그래 '잠룡(潛龍)'이라 한다. '와룡(臥龍)'이라는 말도 비슷한 말이 아닐까? 어쨌든 잠룡은 아직 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젊은이의 이미지이다. 잠룡은 속에 귀한 옥을 간직하고 있지만 아직 가공하지 않은 원재료 상태의 옥돌과 같은 존재이다.
<<주역>>이 잠룡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그건 적어도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한 담금질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잠룡은 실력과 덕을 준비하고 갖추는 시기이다. 잠룡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정보가 있다. 하나는 그가 '물에 잠겨 있다(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용(龍)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
잠룡의 시기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수렁일 수 있다. 인생을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그들 만의 수렁이 있고,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잠룡의 시기가 있다. 이런 시기를 지날 때, 위안이 되는 괘가 다음의 <중수 감괘(重水 坎卦)>라 한다.

이 괘의 괘사를 보면, "習坎(습감)은 有孚(유부)하야 維心亨(유심형)이니 行(행)하면 有尙(유상)이리라"이다. 해석하면, '습감(習坎)은 믿음을 두어서 오직 마음이 형통하니, 행하면 숭상함이 있을 것이다"이다. 그러나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좀 쉽게 풀이하면, 내괘와 외괘가 감(坎, 구덩이 또는 험할 감)으로, 감(坎)이 거듭되었다 하여 ‘습감(習坎)’이라 하였다. 안팎으로 내괘와 외괘가 거듭 험하니, 이렇게 험한 상황에서는 굳게 믿음을 두어야 한다. 안팎으로 모든 상황이 험하니, 굳은 믿음으로 오직 마음을 형통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험하더라도 이러한 마음으로 가면 험함을 헤쳐 나갈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남을 구제해 줄 수도 있으니, 숭상함이 있다. 그러니까 구덩이가 겹쳐 있다. 구덩이를 지나는 물처럼 미더움이 있으니, 오로지 마음으로 통할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아름다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로 이해를 한다.
물이 구덩이를 지나가듯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은 흐르고 또 흘러와 구덩이를 가득 채운다. 그러면 구덩이를 넘어 다시 앞으로 흘러간다. 구덩이가 또 나타나면 그것도 또 가득 채운다. 구덩이 안에는 조금 더 푹 빠지는 깊은 곳이 있는 경우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똑같이 수렁에 빠져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덜 빠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물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가장 깊은 곳부터 채워 올라온다. 그리고 물은 결국 구덩이를 넘어 흐르고 또 흘러간다. 그래서 물은 미더움이 있다. 물이 늘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보면 마치 물에 마음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한결같다면 형통할 것이다. <감괘>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이다. 잠룡의 태도이어야 한다.
<감괘>는 우리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도와준다. 가야 할 앞길에 구덩이들이 널려 있다. 깊은 수렁도 있다. 물이 구덩이를 차곡차곡 메우고 전진하듯 가고 또 가다 보면 끝이 보일 것이다. 이렇게 마음 먹으면 몸은 비록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마음은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다. '절망하다'를 중국어로는 '신쓰(心死)'라 한다. 마음이 먼저 죽는 것이 절망이다. 마음이 먼저 죽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험난함에 빠지더라도 반드시 살아나오게 되어 있다.
잠룡의 정신은 세태와 명성에 흔들리지 않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으며, 꼬리를 잡고 뽑아내려 해도 뽑히지 않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初九: 潛龍(잠룡) 勿用(물용)"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그대는 막 시작했다. 그대는 물에 잠겨있는 용이다. 그대 자신을 헛되이 쓰지 말라. 그대를 드러내지 말라. 그리고 잠재능력을 최대한 축적할지 어다. 미래의 도약을 위하여!" 그리고 도올은 "물용(勿用)에서 "용(用)"은 용이 주체가 되는 동사로서 능동적으로 해석을 해서, '너 자신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으라 한다.
잠룡은 자존감으로 충일한 존재이어야 한다. 때가 아니면 깊은 물 속에서 나올 생각조차 없는 존재이어야 한다. 잠룡이 '용의 덕'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용의 덕이란 자존감이다. 인간은 삶을 물 속에서 시작한다. 어미로부터 몸을 받을 때도 아기집의 양수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자아에 눈을 뜨는 청춘기에도 물속에 잠긴 것 같은 존재로 깨어난다. 물속에 잠긴 존재인 인간은 자존감을 통해서 잠룡이 된다. 잠룡은 자존감의 결여에서 오는 조급증이 없다.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 혹은 믿음'이다. 자존감은 다른 이와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으로 지적되는 것들은 이렇다. 실력을 쌓는 것, 작은 성공을 누적시키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외부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가 더 높은 수준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 자존감은 바같에 있지 않고, 자기 내면에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구별해야 한다.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실천이다.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우고 흘러가듯이, 걷고 또 걷는 길 뿐이다.
<건괘>는 스스로 강해지라고 말해주는 괘이다. 내면이 강해지고 정신이 강해지면 외면도 굳세고 활동적으로 변해간다. 자신감이 차올라 양기가 정수리 위로 치솟기도 한다. 이렇게 기질이 강해질 때 제대로 단련을 거치지 않으면 세상에서 큰일을 하는 커녕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역경>>의 64괘 중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건괘>는 강건함을 찬양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강검함을 어떻게 단련하고 제약하고 연마할 것인가를 줄기차게 이야기 한다. 그래야 함부로 나서거나 설치는 대신 자제력을 발휘해가며 자기 역량을 제대로 기르고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자신을 진정으로 강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한다. 그래서 <건괘>는 잠룡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잠룡 다음에 용이 밭에 나타나고, 하루 종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에게 익숙한 연못에서 뛰다가 끝내 하늘로 날아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건괘>는 물에서 나온 잠룡이 하늘을 나는 비룡이 되기 까지 다음과 같이 각 단계마다 스스로 강해지기 위한 단련 과제를 부관하고 있다.
- 밭, 즉 현장에서 고군분투한다.
- 사람을 찾아내는 역량을 길러라.
- 자만에 빠지지 말고 시시각각 반성하라.
- 작은 성취에 현혹되지 마라.
이런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봄이 기다려진다. 그래 오늘은 이성부 시인의 <봄>을 공유한다. 오늘 산책 길에서, 오늘 아침 사진처럼, 영춘화(迎春花)를 만났다. 언뜻 보면, 개나리인가 하지만, 영춘화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꽃잎의 숫자가 6개이고, 꽃의 크기가 작다
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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