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정신은 ‘전진하는 분석’과 ‘후퇴하는 종합’, 즉 '통찰'하는 정신과 일상에서의 실행이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총체적으로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고, 그걸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우리의 삶과 세상을 잘 볼 줄 알고, 잘 살, 웰-빙(well-beong)하게 해준다. 이러한 통찰의 힘을 기르는데 최고의 자양분이 인문학, 후마니타스(humanitas)인 것이다. 잊지 말 것은 진정한 통찰의 힘은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끝까지 학습하고, 아직 대답이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더 철저하게 캐묻고, 이해가 미진하다 싶으면 더 깊숙이 숙고하고, 판단이 안 서는 곳이 있다면 분명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되 충분하지 않다면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백 번을 하겠고, 다른 사람이 열 번이면 가능한 것을 나는 천 번을 각오한다. 참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워질 것이고, 유약한 자도 단단해 질 것이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선비정신이다. 나도 나에게 남은 삶은 선비처럼 살 생각이다. 우리의 선비정신이 인문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문, 사, 철(文, 史, 哲)이다. 여기서 문(文)은 문장이다. 문장은 기교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다. 영혼, 마음의 '뜰"을 넗히고 잘 가꾸어야 문장이 넘쳐 난다. 사(史)는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아갈 바를 살피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 '표폄(褒貶, 시비, 선악을 판단 결정하는 것)'이다. 철(哲), 철학은 관념의 퇴적이나 사념의 유희가 아니라, 깊은 생각과 넓은 조망을 통해 삶의 진정한 원리를 발견해가는 살아 있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박제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魂, 정신) 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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