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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25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1월 24일)

오늘부터 나의 <인문 일지>를 다시 공유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리듬을 잃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월이 화살처럼 흘렀다. 다시 리듬을 회복하고 나의 <인문일지>를 공유한다. 바람은, 이 글과 시를 통해, 우리 모두 자신들의 어휘가 풍부해지고 언어를 통한 추론과 논리 능력이 성장하면서 인문 정신을 기르는 시작이 되는 거다. 이게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특히 시를 큰 소리로 낭독하면, 목소리도 안 늙고, 정서의 폭과 깊이가 생길 것이다. 언젠가 공유했던 글을 다시 정리해 본다. 시를 읽으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가 좋다.
(1) 시를 읽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특히 내 영혼의 떨림을.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 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 구나, 몸의 반응을 느낀다. 
(2) 시를 읽으면, 내가 시적화자가 되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기도 한다. 어떤 시는 잘 모르는데, 시를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 든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3) 시를 읽으면, 일상의 새로운 면, 일상에서 자기가 쓰고 있는 언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인문정신의 핵심은 질문하기이다. 질문 그거 싶지 않다. 
(4) 시를 읽으면, 나의 발견, 타인의 발견, 일상과 언어의 발견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발견이 된다. 그 발견은 단숨에 사그라지지 않고,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 아침은 이설야 시인이 소개하는 시를 우선 읽는다. "시인은 어머니를 ‘태인 씨’라 부른다. ‘어머니’ 안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의 오롯한 이름을 찾아준다. 태인 씨는 아프다. 아픈 몸이 부자연스럽게 춤을 추다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한다. 시인이 걱정하는 것은 줄줄 새는 수돗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이다. ‘85년 된 마음’이 콸콸 쏟아지지 않게 시간을 붙잡고 있는 시인의 심장 소리를 따라가 본다."(이설야 시인) 시란 이런 거다. 

수돗물 좀 꼭꼭 잠가 주세요
-힘내요 태인 씨/문계봉

30년생 태인 씨, 다음부터 수돗물은 꼭꼭 잠가 주세요. 태인 씨가 수돗물을 잠그지 못할 때마다 나는 정말 많이 속이 상해요 물이 아니라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속으로 자꾸만 안타깝게 끄르륵 끄르륵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그까짓 물값이야 뭔 대수겠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수돗물은 꼭꼭 잠그셔서 자꾸만 춤을 추는 태인 씨 마음, 태인 씨 몫의 시간 좀 꼭꼭 붙잡아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화장실 다녀간 우리 태인 씨, 또 마음을 안 잠그셨네. 태인 씨 센 머리칼처럼 하얀 전등불 밑으로 85년 된 마음이 콸콸.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 "‘아프다’의 주어로 자주 등장하는 ‘마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귀, 눈, 벼랑, 계단, 빛, 온도, 눈물 등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접다, 상하다, 끌다, 지우다, 썩이다 등을 만나면 송곳처럼 찌르는 말이 되어 가슴 밑바닥을 박박 긁는다. 진흙처럼 눅진하게 응어리진 그 말들을 어서 꺼내지 못한다면 병에 걸린 채 우리는 습지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셀 수 없이 많은 마음이 있다. 매일매일 무너지는 마음, 지붕이 새는 마음, 거울과 유리처럼 쨍그랑 깨지는 마음, 있다 가도 없는, 없다 가도 있는 마음이 있다. 사십 오억 년도 더 넘은 마음들이 있다. 그 차고 넘치는 마음의 총합이 오늘도 어딘가로 맹렬하게 지구를 굴리며 가고 있다." 이설야 시인의 시에 대한 평이다.

시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장 짧고도 긴 울림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시를 매개로 하면 창의적인 산물이 나오고, 시를 상실하면 세상을 다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대립과 폭력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시대다. 국경을 위협하는 전쟁과 이념 대립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단절의 시대에 부드러운 시의 감성과 교감으로 ‘경계’의 안팎을 보듬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치유와 화합의 명약이 곧 시다. 고두현 시인의 주장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의 <인문 일지>를 다 읽을 시간에 없다면, 시라도 소리 내어 읽길 바란다.

오은 시인에 의하면, 시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단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참 모르는 어휘들이 많다.
- ‘먹다’라는 단어에서 ‘겁 먹다’를 떠올린 뒤 ‘마음 먹다’를 연결할 수도 있고, 
- ‘기대 앉다’라는 단어를 통해 ‘기대다’와 ‘앉다’가 얼마나 편한 상태인지 환기할 수도 있다. 
- ‘더덜없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더하거나 덜함이 없을 때 찾아오는 깔끔함을 맛볼 수 있고, 
- ‘햇덧’이라는 단어로 해가 더해주는 혜택을 느낄 수도 있다. 
- ‘가만하다’와 ‘사뿐하다’를 둘 다 포함한 ‘가만사뿐’이라는 단어를 가만사뿐 발음해보는 즐거움도 시가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 푸지다: 매우 많거나 넉넉하다. 예) 곳곳에 꽃이 피고 볕이 푸진 봄날이었다. 웃으면 봄이 온다니, 움츠러든 몸을 쫙 펴게 만드는 말이었다. 실언이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 시 같고,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 튀어나온 것이라면 아이는 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까. 아이가 웃으며 봄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아이가 웃어서 봄이 성큼성큼 오고 있었다. 동심과 봄날은 짝꿍 같았다.
- 혹시나 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시앗이라는 단어가 이미 있다. 그것이 “남편의 첩”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시앗과 관련한 속담도 자그마치 여섯 개나 된다.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단어니까 자의적으로 붙인 시앗의 좋은 의미를 널리 알리고픈 별쭝맞은 마음도 생긴다.
- 별쭝맞은 마음-별쭝나다: 말이나 하는 짓이 아주 별스럽다.

"동시에 시는 시대착오적인 언어의 뜻을 다른 방향으로도 돌릴 수 있다. 소수에게만 전유(專有)된 단어를 더 많은 이가 사용할 수 있게 전유(專有)할 수도 있다. 앞의 전유가 “혼자 독차지하여 가지다”란 뜻이라면, 뒤의 전유는 “식민지인의 관점에서 ‘되받아 쓰는’ 저항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다”란 뜻이다. 이는 생명력이 다한 말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단어에 새롭게 자랄 기회를 주는 일일 것이다. 시가 궁극적으로 벗어나는(脫) 일을 지향한다면, 그 출발점은 바로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고정관념, 차별과 배제일 것이다. 머릿속과 백지는 매일 그 탈출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오은)

"돌아오는 길, 웃으면 복이 오고 봄이 오는 것이 즐거워서 또 뭐가 오거나 될 수 있을지 가만사뿐 떠올려보았다. 웃으면 어수룩해서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인 ‘봉’이 되거나 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봇’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볼'에 기꺼이 우물을 만드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의 힘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게 만드는 시앗의 힘이다."(오은) 이런 식으로 시인을 만나고, 시를 읽는 일은 내 머리속에서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는 어휘를 확장 시키는 일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인문 일지>와 함께 더 넓은 바다로, 아니 세계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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