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9일)

노자 <<도덕경>> 제44장을 한 마디로 하면 '만족할 줄 알아야 욕을 당하지 않는다'이다. 그러니 "지지(知止)"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불태(不殆)"하다는 거다.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노자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우리들에게 묻는다. 높은 명예와 명성을 얻어도 몸이 망가지면 다 소용없다. 그러므로 이름을 얻는 것보다는 신체가 건강한 것이 더 소중하다. 재산도 그렇다. 아무리 많은 부를 일궈도 육신이 고장 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명예와 몸, 재산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몸이다. 몸은 존재의 본질을 의미하고 명예와 재산은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 허상,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집안에 금은보화를 가득 쌓아 두면 행여 누가 들어와 훔쳐 갈까 봐 노심초사한다. 근심걱정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금은보화를 보관한 궤짝을 튼튼한 노끈으로 묶어 두지만 궤짝을 통째로 들고 가 버리면 그것도 소용없다. 그래서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큰 병이 될 수 있다. 제44장의 한 구절 씩 정밀 독해를 한다,
名與身孰親(명여신숙친) 身與貨孰多(신여화숙다) 得與亡孰病(득여망숙병): 명예와 내 몸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내 몸과 재산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큰 병인가? 다시 말하면, 소유와 나눔 중에 무엇이 더 괴로운 가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여기서 "신(身, 몸)"은 나의 존재의 근원이고, 실(實)이고 체(體)이다. 반면 명(名, 이름)은 나의 존재 밖에 있는, 나를 부르는 약속이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는 것으로 약속된 것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몸이다. 몸과 이름(또는 명성이나 명예),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나에게 가까운가(친한가)? 그 다음 "화(貨)"는 '재화(財貨)'를 가리키며 문명 속에서 상품화된 물건들을 가리킨다. 물론 돈도 "화"에 속한다. 그리고 한문에서 "다(다)'는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다. 나의 존재 그 자체인 "몸(身)"만 있으면 항상 얻을 수 있는 "화(貨)",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이냐 묻는 거다.
왕필의 주석이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재화무염 기신필소(財貨無厭 其身必少)"라 했다. '재화를 싫증냄이 없도록 탐하면 몸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는 거다. 다음은 도올 김용옥의 강의에서 한 말이다. "손가락이 잘려도 화투장을 계속 들고 있는 놈이나 확장에만 미쳐 있는 대기업의 장(長)들이나 별 차이가 있을손가?"
"得與亡孰病(득여망숙병)"는 말 그대로 하면, '얻음과 잃음, 어느 것이 병이냐'는 말이다. 물론 잃음도 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잃음 보다는 많이 얻음이 더 화근이 된다.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맥상 "득(得)"은 '재화나 명예의 얻음'을 의미한다. "망(亡)"은 '망신(亡身), 즉 몸의 망가짐'을 의미한다.
'망신'이란 말은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말이나 행동을 잘못하여 자기의 지위, 명예, 체면 따위를 손상함'이라 사전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망신살(亡身煞, 몸을 망치거나 망신을 당할 운수)'이란 말도 자주 한다. 예를 들어, "망신살이 끼다", "망신살이 뻗치다"가 사용된다. 흔히 망신은 자신(身)이 곧 잡아 먹히리라는 사실도 모르고(忘) 눈앞의 승리에 취해 있다는 것이다.
장자가 밤나무 숲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산목(山木)> 편을 읽어 본다. "장자가 울창한 숲으로 여행을 갔다. 어디선가 날개가 넓고 눈이 큰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밤나무에 앉았다. 장자는 돌을 들어 새를 잡으려 했다. 장자가 까치를 향해 돌을 던지려는 순간 까치는 자기가 위험에 빠진 것도 모르고 나무에 있는 사마귀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런데 사마귀는 까치가 자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매미를 향해 두 팔을 쳐들어 잡으려 하고 있었다. 매미는 그것도 모르고 그늘에서 자신이 승리자인 양 모든 위험을 잊고 노래하고 있었다. 장자는 순간 세상 그 누구도 진정한 승자가 없음을 깨닫고 던지려던 돌을 내려놨다. 그때 밤나무 숲을 지키는 산지기가 쫓아와 장자가 밤을 훔치는 줄 알고 그에게 욕을 퍼 부으며 막대기를 흔들어 댔다. 장자 역시 최후 승자는 아니었다."
장자가 밤나무 숲에서 깨달은 것은 망신(忘身)이다. 우리는 서로 먹히고 물려 있으면서 자신이 영원한 승리자인 듯 착각하며 산다. 지금 나의 승리 뒤에서 또 다른 승자가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망신의 축배를 든다. 내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상대방을 누르고 이겨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 또한 누군가의 제물이 될 것이란 사실은 모르고 살고 있다. 장자 우화에 나오는 매미든, 사마귀든, 까치든, 장자든 각자 처지에서 자신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승리를 확신하고 승리에 도취해 있는 순간 뒤에서 그 승리를 뺏으려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그칠 줄 알아야 한다.
이 망신 이야기는 박재희 교수의 글에서 보고 갈무리한 것이다. 세상에는 지금 승리가 영원하다고 착각하여 승자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내 앞의 승리만을 볼 줄 알았지, 내 뒤에 다가오는 불운의 그림자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 망신하지 않고 살아 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잠깐 방심(放心)하면 어느덧 망신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노자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망신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과 생각이 나 언젠가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한다. "과일 망신 다 시킨다는 그 모과" 말이다. 그러나 김욱진 시인을 다르게 푼다. 오늘도 "지지불태(知止不殆, 멈춤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를 기억하고, 게다가 오늘 시의 모과처럼 "웅숭깊은 향"을 품고 충만한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모과에 대한 단상/김욱진
방 한 모퉁이 책상 위엔
한 열흘 전쯤 고향 집에서 주워 온
모과 한 개 뎅그러니 놓여 있다
낯설이 해서 그런지 얼굴색이 노래지고
주근깨 같은 까만 점도 후벼 파주고 싶을 만큼 생겼다
그 단새 구멍 두어 군데 숭숭 나 있는 흠집
나의 귀지 같은 더께 덕지덕지 앉은 구멍 속 한참 들여다본다
흠집은 암갈색으로 점점이 번지는 중이다
더군다나 몸통은 누군가 밀가루 반죽 짓이겨놓은 듯 울퉁불퉁하다
과일 망신 다 시킨다는 그 모과
온몸 쥐어짠 기름 반들반들 내뿜으며 웅숭깊은 향 풍긴다
아, 저 향수 속으로 나를 찾아 나서면
언제쯤 그곳에 가닿을 수 있을까
못생긴 인형처럼 앙증맞은 한 개구쟁이가
내 맘을 온통 다 파먹어 들고 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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