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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유로운가 이다.

248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5일)

어제 미사에서 얻은 생각이다. 주일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며 기도하는 일은 아버지의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늘의 길' 속에서 일상을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제 미사의 말씀들이다. 아버지의 길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 아버지의 길은 노자가 말하는 '도'의 세계와 비슷하다. 노자는 '도'의 작동 방식을 '거꾸로 되돌아옴'과 '부드러움'으로 설명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가는 것은 돌아오고 약한 것이 쓰인다'는 거다.  그러니까 노자의 "도"는 "반(反)"과 "약(弱)"이다.  그리고 더 하나를 말하라면 '허(虛, 비움'이다. 아버지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 8) 아버지의 길은 "꼬리가 첫째 되고, 첫 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 16) 하늘의 길이 후하다고 시기하지 말 것이다. 그게 우주의 운행 원리이다.

노자에 의하면, "반(反)"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弱)"은 도의 쓰임이다. 그리고 '허(虛)'가 있기에 생생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반"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약"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약"의 기능은 '허'의 창조력을 의미한다. '허'가 있어야 순환이 가능해지고, "약"이 있어야 새로움이 개입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 가는 것은 "약"과 "허"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 다 이기려고만 한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영성에 대해 사유를 했다. 이어령 교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컵 하나를 가지고 보디(몸, 육체)와 마인드(마음) 그리고 스피릿(영성)을 설명하였다. 이해가 쉽다. 컵이 육체이다, 죽음은 이 컵이 깨지는 거다. 유리 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이 내 몸이 깨지는 거다.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진다.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다. 그게 스피릿, 영성이다. 원래 컵은 비어 있다. 거기에 뜨거운 물, 차가운 물 담기는 거다.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이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스피릿, 영성이다.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이어령 교수는 컵(육체)가 깨지고, 그 안에 담긴 물(욕망 감정 등의 마인드)이 쏟아져도 컵이 생길 때 만들어진 원래의 빈 공간(영혼)은 우주에 닿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나 자주 '마인드를 비우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빈 찻잔 같은 몸으로 매일 새 빛을 받아 마시며 살라고, 비어 있는 중심인 배꼽(타인과의 연결 호스)과 카오스의 형상인 귀의 신비를 잊지 말라고 우리들 다독였다.

어제는 바람의 빛깔과 향기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오후였다. 그런데 벌써이 9월이 다 지나간다. 가을 시 한 편을 읽고, 영성 이야기를 이어간다.


9월/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영성은 지혜와 같다. 거기서 "영적 휴머니즘"(길회성)이 나오고, 우리는 더 인간적이 된다. 아니 인간 다워 진다. 인간이 인간 답지 않게 되는 길은 집착에서 시작된다. 그걸 놓는 순간, 무상한 세계에서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며, 걱정과 불안을 떨어내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세상의 모든 것에 똑같이 신성이 있음을 보고, 사랑하게 된다.

다시 3 지(知)를 좀 구별해 본다. 이 3지의 순환을 통해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간 다운 앎은 지혜, 영성이다. 그래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기술지와 문명지도 그 활발한 역동성을 갖게 된다. 기술지와 문명지는 집착이고, 자연지를 볼 줄 알아야 집착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식은 주로 정보, 물질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 그리고 그걸로 인간이 누리는 부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미숙은 이걸 '기술지(技術知)'라 부른다.
▪ 지성은 '문명지(文明知)'라고 정의한다. 물질을 알고 부를 확장하면 그걸 어떻게 나누고, 이걸 어떻게 인간 삶에 적용할까, 이 문제가 부각되는데, 그럴 때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지성이다. 기술지와 접속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을 생각하며,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 그 다음은 지혜이다. 인간은 천지를 연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 너머가 궁금하다. 그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 묻게 된다. 그리고 지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질문하는 것이 지혜이다. 이 영역으로 가면 기술지와 문명지처럼 손에 잡을 수 있는 게 없다. 거대한 무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생명과 우주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되면 그 보이는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린다. 그걸 지혜라고 부르는데, 동시에 영성(靈性)이라고도 한다. 그걸 인류학적 용어로 쓰면 '자연지(自然知)'이다. 이는 종교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얼마 전 "영적 휴머니즘"(길회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간의 영성의 다른 말이 아닐까? 영적 휴머니즘은 우리 안에 신의 형상이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 신성은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휴머니즘의 핵이다. 그 신성을 ‘하느님’이라 하든, ‘불성’이라 하든, ‘태극’이라 하든, ‘아트만’이라 하든, 그건 단지 언어적 차이일 뿐 궁극의 차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화장한 후, 재를 묻기 위해 파둔 한 줌의 공간을 보면, 우리는  인생, 그 거 덧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은 정착지가 아니라 배움터일 뿐이다. 많이 공부하고 배우다 가는 거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으로 살든 거지로 살든, 학자로 살든 농부로 살든 그것은 껍질이다. 중요한 것은 그대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이주향) 길회성 고인은 불교의 ‘무상(無常)’을 자유의 표상으로 보았다. “존재는 슬픔을 가진다. 왜냐하면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집착하기 때문이다.”(길회성) "집착한 것에서 무상을 보고 툭, 놓을 수 있을 때 자유가 찾아 든다는 것이다."(이주향)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우리가 무언 가에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고,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니까 걱정과 불안의  그 고통은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일 수 있다. 걱정과 불안의 고통이 회피 되어야 할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마주쳐 스승으로 삼아야 할 몽학선생이 되면 고통까지도 신성한 것이 된다. 당당히 고통을 마주하고, 거기에 실체가 없음을 봐야 지나간 것을 불러내 온갖 망상을 만들어내지 않고, 다가올 것에 불안해 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을 알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대, 요리할 때는 요리에 몰두하고, 산책할 때는 발걸음에 집중하고, 사랑할 때는 사랑만 하고, 일을 할 때는 일만 할 수 있는가? 외로울 때는 외로움을 만져보고, 맨발 걷기를 할 때는 맨발의 촉감을 섬세하게 느껴봐야겠다. 많이 웃고 일용 할 양식에 감사해야 겠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고 달맞이꽃이 달빛을 충분히 느끼듯 그렇게. 그러면 요리가, 산책이, 사랑이 신성한 일이 된다."(이주향)  이때 우리는 지혜의 영성을 획득하고, 그것이 영적 휴머니즘으로 나아가, 더 우리를 인간 답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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