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8월 6일)

오늘 아침도 바다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방파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방파제는 파도를 막기 위하여 항만에 쌓은 둑으로 바다의 센 물결을 막아서 항구를 보호하는 거다.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는 방파제를 보고, "슬픔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살아 남기"를 사유했다.
거센 파도는 모든 것을 휩쓸고 배를 난파 시킨다. 누구도 거센 파도를 피해 살아남기 힘들다. 어쩌면 열렬한 사랑의 모습이기도 한다. 사랑은 서정적이면서 격렬하다.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앙투안는 바토(영어 식으로는 와토)의 <키테라 섬으로의 출항>이라는 그림 이야기를 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그림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림 내용은 제목과는 달리 몇 쌍의 연인들이 키테라라는 섬에서 유희를 마치고 바다를 건너 돌아가려는 상황임을 보여 주고 있다. 키테라 섬은 그리스 신화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비너스)가 태어난 곳으로 '비너스의 섬;이라고도 불리는데 계절은 봄만 있다. 이곳에 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하는 지중해에 있다는 전설의 섬이다.
그림 속에는 연인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인다. 사랑은 영원할 것 같고, 사랑하는 시간 동안에는 기쁨이 계속된다.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신이 된 것만 같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도 감미로운 낙원과 순수한 기쁨을 약속한다. 그림 속에서는 항해의 현실과 위험, 항해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죽음과 고민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화면 오른쪽 큰 나무 아래에는 비너스의 조각상이 있으며 그 발치에는 책과 무기들이 버려져 있는데 이는 사랑이 지식이나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각상 아래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흰 드레스에 붉은 겉옷을 입은 여인이 연인인 남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그 옆에 있는 커플은 막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고, 화면 중앙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뒷모습의 남자는 오른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잡고 재촉하는 반면 여인은 머뭇거리며 뒤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장면은 사랑의 단계를 나타낸다. 즉,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관계이며, 뒤를 돌아보는 것은 사랑의 후회를 상징한다.
사랑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바다 뿐이다. 바다도 사랑처럼 위로가 되면서 절망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도 사람처럼 기쁨을 주면서 모욕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사랑은 무엇인가를 주면서 그만큼 빼앗아 간다. 사랑은 죽는다. 아니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죽는다. 마치 우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파도처럼 말이다. 사랑은 한 없이 주다 가도 거칠게 모든 것을 앗아간다. 아무리 아름답고 단단한 사랑이고 해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치명적이다. 우리는 바다에게 지배되는 것처럼 사랑에 지배된다. 사랑과 바다는 마음대로 오고 간다. 사랑과 바다의 존재는 기적 같지만, 그것이 주는 타격은 넘치는 환희 만큼이나 지독하고 아프다.
사랑은 길들일 수 없으면서 연약하다. 사랑은 태어나 활짝 피었다가 퍼석하게 시들고 끝내 사라진다. 삶에서 실연의 상처만큼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그러나 사랑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별의 슬픔은 외로움만 남기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상처로 이어진다. 사랑했던 상대에게 내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날개가 다 자라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성인 나비나 제비와 같다. 실연을 겪은 사람은 구름 위를 걷다가 다시 현실의 땅바닥에 내려오게 된다.
실연의 아픔이 참기 힘든 이유는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직 헤어진 연인만 생각난다. 졸일 그 생각만 하고 오지 않는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사람은 더 이상 곁에 없는데 여전히 매달리고 자격 없는 집착만 한다. 그러다가 애착이 증오로 변하는 순간이다. <<바다로부터 얻은 작은 철학(petite philosophie de la mer)-한국어 번역판의 제목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는, 이 때 방파제의 기술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한다.
방파제가 맡은 일은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방파제는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재앙이 발생할 수 있어서 계속 관리해야 한다. 그런 방파제 기술이 전하는 교훈은, 마음이 강하든, 여리든, 우리도 슬픔을 누를 수 있는 마음의 방파제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실연의 상처가 크면 무기력 해져서 냉정함을 잃거나 최악의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방파제가 있다면 실연을 겪어도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는다.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여러 방법으로 실연의 상태를 극복해 나간다. 예를 들면 글쓰기에 몰두하기도 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상대에게 행복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또는 가고 싶었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외모, 동네 혹은 생활 패턴을 바꿔 보기도 한다. 더는 자기 자신을 나락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 나름의 건강한 방식을 기른다.
중요한 것은 남이 나에게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실연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느냐 이다.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어도 상처에서 피가 너무 흐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우리가 상실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방파제를 갖는 거다. 그리하여 언젠가 가슴 한 복판에 명중하는 징소리를 꿈꾸며 오늘도 견딘다. 그 견딤으로 징소리는 제 몸의 상처가 깊을수록 가슴속에서 길어 올린 소리로 멀리 퍼져 나간다. 상처 없이 완성되는 삶은 없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난 방파제가 있으니까.
징/박정원
누가 나를 제대로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
피가 철철 흐르도록
퍼런 멍이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찡하게 맞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깊을수록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데
멍울 진 가슴 한복판에 명중해야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는데
오늘도 나는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서쪽 산 정수리로 망연히
붉은 징 하나를 넘기고야 만다
징 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모가지로 매달린 채
녹슨 밥을 먹으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상처는 추락이 아니라, 재탄생의 순간이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다. 류시화 시인에 의하면, 가톨릭에서는 이 고통을 '펠릭스 쿨파', 즉 '행운의 추락'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상처가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겪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신과 가장 가까워진다. 아플 때 에고의 껍질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상처 받은 자에게 사람들은 기도를 부탁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람의 기도가 신에게 가 닿을 만큼 절실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상처보다 더 크다.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고 여긴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삶의 그물망 안에서 그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을 수 있다. 축복이라는 영어 blessing은 프랑스어 blesser에서 왔다. 프랑스어 blesser는 '상처 입다'란 뜻이다. 어원이 같다. "축복을 셀 땐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 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에게 들은 말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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