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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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일이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렇지만 마음을 비우고, 할 수 있는 일만 하기로 했다. <<장자>>에서 배운 것을 다시 소환한다.
(1) 망아(忘我):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린다. 나를 비운다.
(2) 승물유심(乘物遊心):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의 파도를 탄다. 사물이나 일의 변화에 맡겨 조화를 이룸으로써 마음을 노닐게 한다.
(3) 탁부득이 양중(託不得已 養中): 어찌할 수 없음에 맡김으로써 중(中)을 기른다. '탁부득이'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둠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일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내면의 세계를 어디에도 기울이지 않고 중(中)을 지켜 나가자는 거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를 한 마디로 말하면, '무위(無爲)의 가르침'이다. 모든 것을 억지로 하거나 꾸며서 하지 말고,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이 '무위의 가르침'이다. 이는 억지로 꾸민 말, 과장한 말, 잔재주를 부리는 간사한 말, 남을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말, 남을 억지로 고치려는 말 등을 삼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 아침 다시 다짐한다.
(1) 遊心(유심):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도록 한다.
(2) 託不得已(탁부득이): 부득이 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둔다.
(3) 養中(양중): 중심을 기르는 데 전념한다.
(4) 安名(안명): 그저 그대로 명(命)을 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를 억지로 거역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자는 거다. 이를 우리는 '안명론(安名論)'이라 한다. 우리의 운명이 모든 면에서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이 꽉 짜여 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논증하고 그것을 꼼짝 없이 그대로 믿는 운명론이나 숙명론과는 다르다. '안명론'은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함)와 비슷하다. 니버의 기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양중(養中)하려면, 삶의 태도를 정비해야 한다. 엄지혜의 <<태도의 말들>>이 힘이 된다. 오늘은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더러움은 더럽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 별거 아니다. 함부로 하고, 제멋대로 하는 건 아름다움의 정반대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어렵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 윤리와 떨어질 수 없는 건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욕 한 번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한번 꿀꺽 삼키고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입술을 깨물고 참는데서 나온다. 손님이 나가자 마자 문을 꽝 닫아버리거나, 친구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 닫고 가버리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건 예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떠나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는 그 짧은 순간은 아름다운 인간의 시간이다. 아름답게 살려면 아름다움을 믿어야 한다.
번잡한 일상사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일은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돈과 관계된 것에만 눈을 파느라고, 경제 생각만 하느라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산다. 아름다움 이야말로 삶의 기쁨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목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없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도 보는 눈과 투명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면, 어디서나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투명한 감수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수한 사랑이다.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보면, 보이는 것마다 모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아름다운 사물을 보고 인식하고 경험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 존재가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모든 분별을 떠나서, 욕심을 떠나서 하나가 될 때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은 친구 집 옆에서 잘 크고 있는 호두 두 알이다. 호두 껍질이 보인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어렵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만듦새는 좋은데 속이 부실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좋은 책은 좋아 보이는 책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예술서 전문 출판사 아트북스의 대표 정민영이 했다는 말이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라서 책의 인상, 즉 디자인을 통해 호감을 얻어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좋은 음식을 좋은 그릇에 담듯, 좋은 글도 좋은 장정으로 묶으면 더 빛이 나기 마련이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릴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면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은 앞뒤가 다르지 않은, 호박씨를 절대 까지 않는 착함이 빛을 발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편하게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말했다. "착하면 만만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우스운 건 허세 가득한 쌀쌀맞은 사람이다.
"48시간 법칙"을 배웠다. 순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 참고 본다는 거다. 황당한 말을 듣거나 일을 당하면, 우선 좀 참는다. 나의 기분 나쁨을 즉각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24시간이 지나고 마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또 24 시간을 참는다. 이틀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다. 살다 보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온다. 선택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 출판인 김규항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한다"고 했다. 특히 입이 간지럽고 속에서 울분이 차오를지 언정, 내일 후회할 것 같은 선택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말해 놓고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으면 참는다. 나도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며 살 생각이다.
끝으로, 작년에 재미있게 읽었던,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중 네 번째인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는 규칙으로 마음을 달랜다.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두 분야에서 마을 최고의 전문가로 대접을 받는다. 그런 동네 영웅들은 각 분야의 승자가 되어 세로토닌 호르몬의 혜택을 누린다. 나도 그런 면이 있다. 저자 피터슨에 의하면, 작은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 압도적으로 저명한 인물이 많다고 하였다. 현대인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산다. 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수억 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인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세상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본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재미도, 의미도 없이 따분하기만 하고,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취향은 후지고, 몸매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면에는 우리를 잘 아는 비평가가 살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자기 비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혹한 자기 비판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법이다. 죽으면 다 소용 없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우리는 '긍정적 망상(positive illusion)'이라 한다. 세상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곳이어서 망상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거짓말 보호막을 활용하는 거다.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대안이 있다. 내면의 비평가가 늘 자신의 노력과 삶의 가치를 깎아내린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닫아야 한다. 그건 지혜로운 충고가 아니라 쓸모 없는 지껄임이기 때문이다.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허무주의의 상투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냐?' 하고 화를 내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합리성으로 위장한 비열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야"라 반응하면 지는 거다.
문제는 우리가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짓대로만 보기에는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다. 좋은 게임은 내 소질과 능력에 맞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예를 들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작업 중인 작품, 직업 등이 게임이다. 게다가 어떤 게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게임에 도전하면 된다. 또한 게임을 바꿔도 효과가 없으면 아예 새로운 게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모든 게임에서 승리한다는 말은 새로운 분야, 까다로운 분야에는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승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성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성장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을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생의 게임들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사실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 잠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십중팔구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가치 기준을 정하기 전에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여기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1)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2)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3) 고된 일상 속에서도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떤 보상, 어느 정도의 여가가 필요한가?
(4)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인생을 놔 버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우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고유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와 씨름한다. 이런 문제는 각자가 살아온 삶으로 인해 빚어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디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포기해야 할 것과 계속해야 할 것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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