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날씨 탓인지, 사는 게 재미 없어지려 한다. 비가 오려면 확실히 오든지, 더우려면 습도 없이 따갑든지,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찝찝하다'. 관념적으로 이해한 것인지, 어제 아침에, 난 사랑은 상대방을 멋지게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쓰고, 마음에 저장해 두었는데, 어제 낮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단점이, 그 사람의 못 된 면만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부터 친절하면 되는데, 나는 상대의 불친절을 먼저 탓했다. 오늘 아침 시처럼,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법"은 "하늘을 넘보지 않고", 콩나물처럼 "담담하고 단호하게/발을" 아래로 뻗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고에 의하면, 우주는 서로 반대되면서 보완적인 힘들의 상호작용으로 진행되고, 사물이나 생명 또한 그 두 과정에서 생겨나고 생성하다 소멸한다고 본다. 그 두 힘의 포괄적 상징을 음양(陰陽) 또는 건곤(乾坤, 하늘과 땅)이라 한다. 이 음양의 원리에서 천지가 생기고, 남녀가 생겨 생명을 산출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그냥 저절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더 깊은 관심을 두지 않고, 사려(思慮)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우주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성학십도』 중 제 2도인 '서명(西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여기 가물가물하니, 콩알만한 크기로 천지만물과 구분되지 않고, 그 한가운데 서 있다." 흔히 보는 산수화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이다. 동아시아적 사고(思考)에 의하면, 사람이 아니라 우주가,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중심에 있다고 말한다. 개인은 전체의, 이를테면 우주나 사회, 가족 등 공동체의 유기적 일부로서, 각자가 정하는 위치와 상황에서 적절한 역할과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가? 맹자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리의 '결의(決意)'라고 말한다.
맹자는 "신체와 감정은 의지의 인도를 따른다"고 말한다. 기(氣), 즉 신체와 거기 연관된 감정은 어떤 점에서는 수동적인 것인데, 이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적극적인 힘, 즉 의지(意志)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걸려 넘어지고, 처음 먹은 마음이 간 데 없기도 한 것이 인생이지만, 맹자는 두 길을 제안한다. 하나는 선을 향한 의지를 굳건히 하고, 또 하나는 신체와 감정을 편안한 상태에 두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게 "콩나물이 서서 키가 크는" 이유일까?
다음 주는 <초연결시대, 인간을 말하다>의 특강 7주차로, 우리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는다. 주인공 돈키호테의 삶은 세 가지 가능성 앞에 놓여 있었으며, 그는 이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원래의 삶으로 이달고로서의 무위도식(無爲徒食. 아무 하는 일 없이 다만 먹기만 함) 하는 삶, 작가가 되는 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생각을 지배했던 편력 기사로 모험의 길을 떠나 정의를 실현하여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일, 세 가지이다.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끊임없는 선택의 역사이며, 그러하기에 여러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한다. 『돈키호테』의 주인공은 절대적인 선택의 자유에 따라 기사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개인 자유 의지의 발동이다. 주인공이 선택한 편력 기사로의 길은 '나'의 선택 의지이다. 그 선택 의지는 기사이기를 원하는 옹호 의지로, 옹호 의지는 행동하고자 하는 모방 의지로, 모방 의지는 자기 자신의 창조 의지로 나아간다.
이 번 주말에는 탁구시합이 있었는데, 취소되었다. 잘 됐다. 주말 내내 『돈키호테』의 심층읽기를 할 생각이다.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는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세상에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문학서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꼽았다.
콩나물은 서서 키가 큰다/김성옥
콩나물이 그렇다.
대개 머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키 크는 것과 달리
발이 뻗으며
키가 큰다.
하늘을 넘보지 않고도
할 일을 다 하는 셈이다.
단순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법을 깨친
수도승처럼
담담하고 단호하게
발을 뻗는다.
콩나물은 서서 키가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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