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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단오/곽재구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3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해 여러 가지 행사를 가져왔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명절로 정해졌다. 명절은 대부분 농경 사회에 맞게 정해졌으며 계절적인 요소와 민속적인 요소가 포함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축일이다. 예전 명절은 거의 다달이 있었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변화하면서 정월의 설과 대보름, 단오, 팔월의 추석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명절이 그 의미를 잃었다.

오늘은 단오절이다. 음력 5월 5일로 1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진다.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다섯을 의미하는 오(五)의 뜻으로 통하므로 매달 초하루부터 헤아려 다섯째 되는 날을 말한다. 예로부터 음양 사상에서는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했는데 양의 수를 상서로운 수로 여겼다. 그래서 양수가 겹치는 날인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은 모두 홀수의 월 일이 겹치는 날로 길 일로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날이면 어떤 일을 해도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그 중에서 단오는 일 년 중 인간이 태양 신을 가까이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왔다. 모내기를 끝낸 후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로서 '수릿날'  '천중절' '중노절' 등으로 불린다. 1518(중종 13년) 년부터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의 하나로 지켜왔다. 단오절엔  씨름, 그네 뛰기, 풍등, 부채 만들기, 수리취떡  먹기 및 창포물에 머리감기 등이 있다. 오늘 사진이 그 창포이다.

그리고 지방 선거가 끝나고, 세상은 조용해졌다. 노자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나의 메시지이다. 도의 움직임은 반드시 뒤집는다는 거다. 이 세계가 반대되는 범주들의 꼬임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런 꼬임을 이루는 힘, 즉 운동력은 무엇인가? 노자는 <<도덕경>> 제40장에서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라 답한다. 즉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도의 운동력"이라는 말이다.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운동력으로 해서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다. 이 운동력은 바로 자연이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노자는 보는 거다.

이 자연의 형식에 따라, 나는 오늘 아침도 '되돌아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추운 겨울이 되면 다시 더운 여름으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되새긴다. 도는 항상 근본으로 돌아가고, 또한 도는 고요함 속에서 뒤집어진다. 고요 속에 머물 일이다. 뒤집어짐은 그 성질이 반전한다는 뜻이다. 온저하면 무너지고,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며, 가득 차면 기우는 것이 반전이다. 만물과 인생의 이치가 다 그런 반전 속에 있다.

그러나 그 반전은 전제 조건이 온전 해져야 한다는 거다. <<도덕경>> 제22장의 마지막 구절이 "진실로 온전하여지는 것들은 모두 도로 돌아간다(誠全而歸之, 성전이귀지)"이다. 여기서 "성전(誠全)"의 "전"은 "곡즉전(曲則全, 굽어서(曲) 온전할(全) 수 있다)"의 "전", 다시 말해서 "곡"을 포월(包越)하는 "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에 도달한 사람은 결국 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노자가 말하는 '곡'은 '전'을 포월하는[품어 안고 넘어가는] '곡'이다. 그래서 온전하여 질 수 있는 것이다. 무지(無知)는 유지(有知)의 극치로 이해될 수 있으며, 무위(無爲)는 유위(有爲)의 궁극적 차원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노자의 무지(無知)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빛을 말하지 않는 '광이불요(光而不燿, 제58장)'의 고차원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말로 온전한 것은 그 "곡즉전"의 원리로 귀결된다는 거다. 모든 온전한 상태, 즉 가장 좋은 결과들은 모두 그 "곡즉전"의 원리에 의해서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는 거다. 오강남은 "종교란 궁극적으로 구원을 목표로 하는데, '구원'이란 '온전함'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 진영은 잠시 구부리는 거다. 너무 슬퍼하지 말자. 때는 기다리면 온다. 이 변화의 우주 원리를 잘 보면, 우리는 잘 나간다고 좋아할 것 없다. 곧 내려가야 할 테니. 일이 잘 안된다고 걱정할 일 없다. 떨어지면 반드시 올라가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니까. 문제는 이 진리, 즉 반대의 힘으로 끌려간다는, 어려운 말로 "반자도지동"은 심란하거나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 그걸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준비하는 거다.

마침 우리는 <<도덕경>> 제28장을 읽을 차례이다. 이 장은 "복귀어영아(復歸於嬰兒)" → "복귀어무극(復歸於無極)" → 복귀어박(復歸於樸)으로 3 단락이다. 여기서 영어는 어린아이, 무극은 극이 없는 질박함, 박은 통나무이다. 그리고 웅(雄, 수컷)과 자(雌, 암컷), 백(白)과 흑(黑), 영(榮)과 욕(辱)의 양면에서 화려한 전자의 덕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자의 초라하고 어둡고 억울한 자세를 지킬 줄 아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거다 <<도덕경>> 제22장의 내용과 비슷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 우려면,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한다. 사물을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 즉 조지어천(照之於天)이고, 도의 지도리(도추道樞, pivot, still point)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인시,因是)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명,明)이다. 중세의 한철학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반대의 일치, 양극의 조화(coincidentia oppositorun)이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이란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 실재 그대로 그렇다 함이란 영어로 reality, 산스크리트어의 taahta(정말 그러함, 진여), 영어의 let it be 같은 단어를 연상한다. 모두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았기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통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계절의 순환과 풀의 자라남에는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냥 두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와 같은 '무위', '아무 것도 하지 않음', 무심함으로 이 세계이 변화에 대처함이 노자가 말하는 '무위'라 본다.

비움과 고요를 강조하고 있는 <<도덕경>>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덜어내고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고, 무위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는 말이다. 여기서 '무위'를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위'가 아니라 '무불위(되지 않는 일)'라는 효과를 기대하는 거였다. 어쨌든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면, 늘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롭다. 샘이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러다 결국은 더 이상 맑은 물이 샘솟지 않게 된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을 자꾸 비워야 영혼이 맑아진다. 그래 선거 후유증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아침도 '되돌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너무 그리워하지 말자. 때는 기다리면 온다. <<도덕경>> 제28장의 정밀 독해는 다음으로 미루고, 곽재구 시인의 <단오>를 공유하고, 오늘 <인문 일기>를 마친다.

단오/곽재구

사랑하는 이여
강가로 나와요

작은 나룻배가 사공도 없이
저 혼자 아침 햇살을 맞는 곳

지난밤
가장 아름다운 별들이
눈동자를 빛내던 신비한 여울목을
찾아 헤매었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곳으로 와요
그곳에서 당신의 머리를 감겨드리겠어요
햇창포 꽃잎을 풀고
매화향 깊게 스민 촘촘한 참빗으로
당신의 머리칼을 소복소복 빗겨드리겠어요

그런 다음
노란 원추리꽃 한 송이를
당신의 검은 머리칼 사이에
꽂아드리지요

사랑하는 이여
강가로 나와요
작은 나룻배가 은빛 물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곳
그곳에서 당신의 머리를 감겨드리겠어요
그곳에서 당신의 머리칼을 빗겨드리겠어요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곽재구 #단오 #반자도지동 #무위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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