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6월에는/나명욱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벌써 6월이다. 신록은 녹음이 더 짙어 질 거다. 참 세월 빨리 간다. 어제는 내 고향 금강 길 따라 부여에 가서 특강을 하고 왔다. 금강을 한문으로 이렇게 쓴다. 錦江. 비단 금자를 쓴다. 부여 쪽으로 갈수록 백제보와 공주보로 물 길을 막아, 아름다운 금강의 모래를 볼 수 없었다. 길 따라 심겨진 소나무만이 고결한 모습으로 인상적이었다.

부여로 가는 길에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단시일 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 집념과 성과는 대단하나 그 과정은 억지였다. '억지'란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이다. 억지는 항상 불필요한 부작용과 희생을 요구한다. 억지를 부리다 보면, 최근의 일부 정치인들처럼,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말 실수'를 한다.

우리는 아직도 후진국처럼 GDP나 GNP 숫자에 집착한다. 숫자가 선진국이 된 것으로 착각하며, 그래서 오만이 지나치다. 오늘 사진 처럼, 옛 도시에 저런 건물을 배치하고 있었다. 배려와 친절이 선진국의 표상이다. 그리고 원시 부족들은 배려와 친절을 파괴하는 행위들, 비방, 거짓말, 모함을 일삼는 구성원들은 엄하게 벌하던지 동네에서 추방했었다. 인터넷 망을 시골까지 깔고, 정보교환 속도를 높이는 기술을 소유하는 것이 21 세기 정글의 승자가 되는 것이라고 우린 착각하고 있다.

개인을 더 나은 개인으로 교육하고, 국민을 숙고하는 국민으로 승화시키는 콘텐츠가 없으면, 오히려 더 나쁘다. 그들 손에 주어진 5G는, 초등학교 입학한 어린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세계 최강의 기술을 탑재한 핸드폰으로 정제되지 않으며 더욱 자극적인 정보들로 머리를 채웠다. 국민을 교육시켜야 할 TV는 온통 쇼핑을 부추기고, 뉴스는 개인이나 집단의 잘못을 폭로하는데 혈안이며, 시사와 교양은 정제되지 않은 즉흥적인 '막말잔치'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원래 태어날 때 사람은 생각이 없다. 살아가면서 사회 체제나 구조 등에 의해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 생각이 진짜 내가 한 생각인가, 그 생각이 진리에 가까운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하다'는 내 생각을 '의심하다' 아니 '회의하다'로 읽어야 한다. 고집스럽게 갖고 있는 내 생각을 부정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예컨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생각의 경우 정답이 없다. 다만 이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있고, 우리는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진다. 왜냐하면 풍요로운 사유와 정교한 논거를 갖춘 내 생각을 가져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내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택한 방식은 글쓰기와 토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안 되는 것은 일제 식민지 교육 문법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린 학교에서 주입식 암기 교육을 받았고, 그 방식은 아직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심사가 뒤틀렸으면, 모과 나무 꽃처럼, 있는 듯 없는 듯이 이목을 끌지 않고 조용히 있었으면 한다. 아니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하면서 자기 삶을 꾸리는 사람은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지적 '부지런함'이란 단독자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따라하기'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 들어가 가능해지도록 '틈'을 벌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답에만 빠지지 말고, 질문하는 사람이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다.

"6월에는" 너무 달리지 말고,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

6월에는/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그래서 더 깊어지고 높아지는 것을

이제 절반을 살아온 날
품었던 소망들도
사라진 날들만큼 내려놓고
먼 하늘 우러르며 쉬면서 가자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나명욱 #와인비스트로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