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7일)

오늘 아침 사진을 보고, 노자 <<도덕경>> 제26장 두 번째 문장, "是以聖人終日行(시이성인종일행) 不離輜重(불리치중)"을 기억했다. 이 문장의 뜻은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는 거다. 생각하며 살 일이다. 신중(愼重)하자는 거다. 다르게 말하묜 조급해 하지 말자는 거다. 노자는 '중후함이 경솔함의 근본이 되고, 안정된 것이 조급함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일반 원칙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 노자는 그것을 모델로 하여 통치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 원칙을 충실히 지켜야 하는 통치자는 무기와 양식을 싣고 자신을 따르는 무거운 수레(輜重, 치중) 곁을 떠나지 않는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중후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화려함이 그를 둘러싸고 있어도 그는 조용한 곳에서 초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중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도 조급함을 경계했다. 성인은 하루 종일 움직여도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리더는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다 했다.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신중하고, 자중하는 길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절제는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참는 것이다. 고대에 군주가 궁궐 밖으로 행차를 할 때는 항상 군주가 탄 수레의 뒤에 '치중(輜重)'이라는 무거운 짐수레를 달고 다녔다 한다. 군주는 항상 신중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고 고요한 것은 조급한 것의 임금이다." "가벼우면 근본을 상실하고 조급하면 임금 자리를 잃는다." 자중한다는 것은 지구의 중력과 함께 하며, 우주의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도덕경>> 제25장에는 "인법지(人法地)"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은 땅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땅의 어떤 면을 본받아야 할까? 그것은 땅의 '무거움'이다. 땅은 무거운 것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 특히 리더는 땅의 이러한 묵직함을 본받아 중후하고 침착해야 한다는 거다. 경박하거나 조급하거나 초조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안달하거나 덤벙거리거나 촐랑거리거나 부산을 떨지 말고 땅처럼 의연해야 한다는 거다.
땅은 스스로 무거울 뿐만 아니라 산이나 호수나 바다 등 온갖 무거운 것을 지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거다. 그래 사람, 특히 리더는 무거운 짐 지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인은 짐수레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지 않고, 짐수레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져 버리고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짐, 사회의 짐, 형제의 짐을 대신 져야 한다. 남의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맡아야 한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명 연설이 기억난다.
2004년 7월에 당시 미국 대선에 출마한 존 케리 상원 의원을 지명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기조연설이다. 그는 '미국은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 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내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내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 선임을 못한 채 혹은 정당한 법적인 절차 없이 체포 당했다면, 그것은 나의 시민권 침해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여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 문장이 감동이었다.
무거운 머리를 짐처럼 이고 견디는 꽃을 보고, 생각이 있으면 모든 역경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여 찍은 것이다. 그리고 이름대로 살기로 했다.
이름대로 살아야겠다/박노해
휘청, 내가 무너지는 날이면
내 마음의 백척간두에 서는 날이면
지구의 벼랑 끝에서 아득히
누군가 호명하는 내 이름의 메아리
이름대로 살아야겠다
이름은
일러냄
내가 이르러야만 할 길로
나를 불러일으켜 내는 것
가장 순수한 염원과
간절한 기원을 담아
내 이름이 여기 이 땅에
한 생의 사명으로 호명呼名되었으니
일생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내가 가장 많이 부른 말
내 이름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겠다
이름을 빼앗기지 말아야겠다
오늘도 누군가 호명하는
우주의 긴 메아리
너를 부른다
나를 부른다
이름대로 살아야겠다
이름 따라 걸어야겠다
그 방법론은 노자에 가르쳐 준 "선섭생자, 이기무사지(善攝生者, 以其無死地)"에서 배운 "섭생(攝生)'이다. 지난 달에 <인문 일지>에 이야기했던 거다. 흔히 우리는 '섭생(攝生)'이란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관리(健康管理)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원한다'는 말로 사용한다. 기원전 430~420년의 ≪히포크라테스 전집(全集)≫ 속에도 섭생법(攝生法)이 있었다. 여기서는 약물(藥物)을 사용하는 인공적인 치료보다는 음식, 운동을 통한 섭생에 의하여 자연적(自然的)으로 치유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섭생'이란 말만 나오면 토인비가 소개한 다음의 "청어 이야기"가 소한된다. 영국 런던의 어부(漁夫)들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런던 항까지 가지고 오는 것이 큰 숙제(宿題)였다. 청어는 성질도 급하고 장거리를 수조 속에 갇혀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항구로 오는 도중 대부분 죽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어부들 중 한 어부만은 늘 살아있는 싱싱한 청어를 가져와서 비싼 값에 팔아 큰돈을 벌곤 했다. 그래서 다른 어부(漁夫)들이 그 비결(祕訣)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지만 비밀(祕密)이라며 가르쳐 주지 않다가 어부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비밀(祕密)을 털어 놓았다. 바다메기가 청어를 잡아먹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청어가 담겨 있는 수조에 바다 메기 두세 마리를 넣어두면 수백 마리의 청어는 메기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必死的)으로 도망을 다니게 되고 결국 이것이 청어의 생명(生命)을 연장(延長)시키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대추나무에 대추를 많이 열리게 하려면 염소를 매어 놓는다고 한다. 묶여 있는 염소는 특성상 잠시도 그냥 있지 않고, 고삐를 당기며 나무를 흔들어 괴롭힌다. 그러면 대추나무가 잔뜩 긴장하면서 본능적으로 대추를 많이 열도록 하여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필사적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식물들도 위기를 느끼면 씨앗으로 번식에 전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생명에 위기를 느낀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만드는 것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 몸도 그냥 편히 두면 급속히 쇠퇴하고, 질병(疾病)과 노화(老化)에 취약해진다. 평소에 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고, 굽혔다 펴기도 하고, 흔들어 주고, 문질러 주고, 비틀어 주기도 하여야 생기가 더욱 발랄해 진다.
노자는 이러한 논리를 <<도덕경>> 제50장에서 "귀생(貴生)"과 "섭생(攝生)"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귀생"이란 '자신의 생을 너무 귀하게 여기면 오히려 생이 위태롭게 될 수 있고, "섭생"은 '자신의 생을 적당히 불편하게 억누르면 생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거다.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키는 "섭생"이 건강한 생을 산다는 것을 설파한 노자의 지혜(智慧)가 오늘날에 더욱 돋보인다. 편안함만 추구하다 보면 몸은 망가진다는 거다.
눈은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고, 귀는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고, 코는 향기로운 것만 냄새를 맡으려 하고, 혀는 부드럽고 맛있는 것만 먹으려 하고, 몸은 편안한 것만 찾으려 하고, 우리의 마음 또한 항상 즐겁기를 원한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눈, 귀, 코, 혀, 몸, 정신의 여섯 가지를 육적(六賊, 여섯 도둑)이라 하여 이것들을 잘 통제해야 몸도 마음도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 다시 자신을 억제하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섭생으로 건강하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이목구비(耳目口鼻)를 아무리 즐겁게 하는 것이라도 넘치지 않게 하고, 좋은 생각을 하며 섭리대로 살아가야 오히려 더 건강(健康)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다. 음식(飮食)을 먹을 때 배부르다고 느끼는 순간이 이미 120%의 음식(飮食)을 먹은 것이다. 우리가 미련하다고 업신여기는 돼지도 제 양의 80% 이상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方法)으로 눈으로 함부로 보지 말 것, 귀로 함부로 듣지 말 것, 코로 함부로 냄새 맡지 말 것, 입으로 함부로 말하거나 먹지 말 것, 손으로 함부로 만지지 말 것, 발로 함부로 차거나 다니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억제하고, 절제함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거다. 언행(言行)을 신중하게 하고, 이목구비(耳目口鼻)를 잘 다스리라는 <<도덕경>>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간다면 늘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스스로의 삶에 충분히 만족(滿足)하며 즐겁고 행복(幸福)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는" "성인"의 태도이고, "땅을 본받는" "인법지"의 자세이다. 자신의 생을 적당히 불편하게 억누르는 거다. 많이 움직여야 한다. 몸은 귀하게 여길수록 건강은 더 나빠진다.
물질의 풍요와 삶의 편리함이 내 몸을 한없이 귀하게 대접하는 오늘날의 '귀생'이 오히려 병이 될 수 있고,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키는 섭생이 건강한 삶을 위한다는 역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는 아침이다. 몸을 그냥 편히 두면 급속히 쇠퇴하고, 질병과 노화에 취약해진다. 세상의 이치이다. 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생기(生氣)가 더 난다. 그러니까 섭생이란 자신의 생을 어느 정도 억누르는 삶을 말한다.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킬수록 건강한 삶이 될 수 있는 거다. 그래 요즈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채소밭에 간다. 그런데 이틀 동안 비가 와서 못 움직였더니 몸이 오히려 찌뿌듯하다. 오늘은 미사를 마친 후, 딸과 세종시에 있는 충남 산림박물관의 황톳길에서 맨발 걷기를 할 생각이다. 푸르름이 짙어 가는 나무들과 데이트를 즐기려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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