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5월 8일)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부모님은 나의 아픔을 자신들의 아픔처럼 여기시고 나의 기쁨은 자신들의 기쁨처럼 여기셨다.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이다. 내가 아플 때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지만,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다. 내가 아플 때 연민을 느끼실 뿐만 아니라, 내 아픔을 자신들이 짊어지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 하셨다. 내가 기쁠 때, 더 기뻐하시는 존재는 부모 님이었다. 어버이날은 우리들에게 그런 심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어버이 날 아침에, 나는 어른 짓을 잘 하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나보다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아내가 생각난다. "별국"이 나의 배를 불리운다. 부모님과 내 아내를 "별빛 사리"로 기억한다. 그리고 사진으로 나마 카네이션을 바친다.
별국/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당신들의 은혜에 감사드리면서, 언젠가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다음 10가지 다짐을 반복하는 아침이다. 삶이 좀 힘들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10가지 마음이다.
1.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계속 건너간다. 이게 내 철학이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버려라. 수많은 결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철수하는 결단이다. 버리면 정말로 필요한 것에만 집중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라고 말하려면, 자신감과 비전 그리고 집념이 필요하다. 내가 늘 지침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이다. "빈방에 빛이 들면(虛室生白, 허실생백), 좋은 징조가 깃든다(吉祥止止, 길상지지), 마음이 그칠 곳에 그치지 못하면(不止, 부지) 앉아서 달리는(坐馳, 좌치) 꼴이 된다."(<<장자>>, <인간세>) 빈방에 빛이 드는 것처럼, 마음을 비웠을 때 새롭게 채울 여지가 생긴다. 중요한 건 멈춤이다. 물리적인 멈춤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멈춤도 필요하다. 멈추지 않고 달리면, 앉아서 달리는 꼴이 된다. 앉아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냥 마음만 바쁘지 백날 가도 제자리이다.
3. 각오, 마음 먹기는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다. 밥 못 먹으면 라면 먹으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굶으면 된다. 각오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떠 안는다와 같은 말이다. 나는 장가가 말한 "승물유심(乘物遊心)"을 마음에 새기며 산다. 이 말은 '일과 사물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고 넘어 자유로운 마음에 노니는 삶'을 뜻한다. '실패든 성공이든 인정하고 그것을 즐기라'는 거다. 더 멋진 해석은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타고 노닐어라'는 거다. 원문은 이렇다. "乘物以遊心(차부승물이유심) 託不得已以養中至矣(탁부득이이양중지의) 何作爲報也(하작위보야) 莫若爲致命(막약위치명)"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遊心)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託不得已), 중심을 기는 데(養中) 전념하십시오. 무엇을 더 꾸며서 보고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그대로 명을 받는 것"만 하면 된다는 거다
4. 운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다. 성과가 오르지 않는 원인은 대부분 기술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집념의 차이이다.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단순한 의욕이나 열정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뤄내겠다는 집념이다. 이 집념으로 자신의 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늘 기회는 온다. 그 기회를 집념으로 잡아야 한다. 기회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고, 그 기회를 잡고 못 잡고는 간절함에 있는 것 같다. 간절(懇切)함이란 신체기관 중 가장 무딘 기관인 간이 절절해 지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바라고 원하는 상태이겠는가? 모든 것은 간절함의 차이이다. 간절(墾切)이 원하면 무엇이든 얻는다.
5. 핵심만을 압축한다. 속도를 손에 넣으려면 본질을 간파하는 눈을 키워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만 알면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연연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된다. 한 인간의 수명은 아무리 길다고 해도 삶은 언제나 너무 짧다. 우리는 금방 죽는다. 금방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체득은 언뜻 생각하면,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포기해 버리려 할 것 같지만, 정반대로 내게 두려움 대신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준다.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한다. 순간에 대한 체득은 필연적으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낳게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흔들어서 무한 확장하려는 예술적인 높이의 도전으로 이끌어 준다. 죽음에 대한 체득이 삶을 튼실하게 북돋운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람직한 일보다는 자기가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일상에서 덜 찌질 해지고,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일 수 있게 된다.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6. 상식이라는 대패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식을 뛰어 넘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것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의 속에 있는 작은 예감, 바보 같은 의견, 사소한 영감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상식은 다수결이지만,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숫자가 많으면 상식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곧 진실은 아니다.
세상에 갑자기 찾아오는 재앙은 없고, 졸지에 다가오는 행복도 없다.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 서둘러 해결했으면 큰일이 아니었는데 무시하고 방관하다가 결국 큰일로 번져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분들은 조그만 조짐과 징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어떤 큰일이든 작은 일에서 시작되고, 풀기 어려운 문제도 결국 쉬운 문제를 방치하는 데서부터 발단이 된다. 노자는 이것을 '반(反)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우주와 세상이 구동하는 원리인 도(道)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오고, 극에 다다르면 뒤집힌다는 거다. 그걸 바래고, 희망할 뿐이다. 부드럽고 야간 것이 반대로 강하고 센 것을 이기고, 비우고 낮추는 것이 결국 채움과 높음으로 돌아온다. 군림과 강요는 결국 뒤집히게 되고, 섬김과 모심은 복종과 존경을 얻게 된다는 노자의 철학이 모두 "반(反)"의 역설이다. 아름다움 뒤에는 추악함이 있고, 행복 뒤에는 불행이 엎드려 있음은, 결국 '반'의 원리가 세상 만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
7. 자신을 보는 눈을 바꾸고 높인다. "사람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통해 성과를 올린다."(피터 드러커) 자신의 장점에 집중해서 성과를 올려야 한다. 자신의 약점에 끌려 다니지 말고, 자신의 강점을 보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는 눈을 바꿔라.
최진석 교수는 "훈련된 지성적 시선의 높이가 그 사람의 철학 수준"이라 주장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 높이에서 작동시킨다. 그 때 작동되는 것이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창의력과 상상력 (2) 윤리적 민감성 (3) 예술적인 영감. 인문(人文)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로 인간의 동선(動線)이다. 인문적 활동이란 인간의 동선을 파악한 후, 그 높이에서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상상이나 창의는 인문의 높이에서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단계에서는 실현되지 못한다. 인문적 시야를 가지려면, 시선의 높이를 상승시켜야 한다. 그건 전략적 높이에서 자기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결정하는 일이다. 시선의 높이는 생각의 높이이고, 생각의 높이가 삶의 높이라고 최진석 교수는 자주 말한다.
시선이 바뀌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땅 위의 아웅다웅하는 삶이 쪼잔해 보이고, 큰 틀에서 오히려 쪼잔한 싸움의 두 당사자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여유도 생기고, 혹여 나 자신이 싸움의 당사가 된다면 통 크게 한발 물러설 용기를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땅 위의 삶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해 온 규칙의 구속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땅 위의 삶을 하늘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내가 옳다고 여겨 온 신념, 나를 가둬온 고정관념을 바로 시선의 높이로 깨어 버릴 수 있다.
8. '기대'가 사람을 기대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사람이 훌륭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은 대개 그들이 그런 기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리만 만들어 주면 모두 자신이 생각했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특히 리더가 부하에게 '무능하다'고 단정지어 버리면, 배려심이 부족한 리더이다. 리더의 임무는 아랫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내 철학은 사람의 향기는 선행(善行)에서 나온다는 거다. 선행이 무엇인가? 예언자 미가가 알려준다.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내가 만난 신이 요구한대로 생활하는 것이다."(<미가서> 6:8) 이를 요약하면, 정의 실천, 자비 추구 그리고 겸손 생활이다.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선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배철현 교수한테 배웠다. 선행에서 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토브(tob)'인데, 이 말은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라는 선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향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좋은 매너, 선행에서 나오는 사람의 좋은 향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의 기준에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선행이란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입장에서 향기로운가를 묻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삶이 관계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타인은 기쁨의 샘일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을 제한하는 질곡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을 조종하려는 충동이 우리 자신 속에서 스멀스멀 자리 잡을 때가 있다.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부과해 그가 내 뜻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걸 우리는 '권력에의 의지'라 한다. 그 '권력에의 의지'는 분수를 모르기에 언제나 한계를 넘는다. 성경은 이러한 과도함 혹은 오만함이 죄라 말한다. 죄는 남을 해칠 뿐 아니라 자기도 파괴한다. 여기서 서슴없음과 당당함은 자신을 강자로 여기는 이들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이기심과 결합되면 몰염치함으로 변질된다. 몰염치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9. 굴욕에 대한 최선의 보복은, 굴욕으로 당한 분한 마음을 투쟁심으로 바꿔 다음 일에 몰두하는 것이 긍정적인 대처법이다. "당나귀와 우물" 이야기를 소환한다.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가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는 늙었고 쓸모 없는 우물도 묻어 버리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 흙은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 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하여 우물 속으로 들여 다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하여 무사히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렸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리고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 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어느 날 곤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이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반대가 되는 거울 뒤쪽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 속 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도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10.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하면 된다. 불가피하게 어떤 길이 막혔다면 즉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만일 다른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내야 한다. 좋은 기회는 제목 란에 '좋은 기회'라고 쓰여 있지 않다. 최고의 기회는 처음에는 관심조차 가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이 아니라, 밑에 깔린 잠재적 가능성을 먼저 들여 다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기회를 잡고 싶다면 이미 만들어진 것에 합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설립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에서 오래 머물러야 한다. 거기서 가능성을 발굴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해 진다. 가능성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사방에 가득 들어차 있는 상태가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내 심연에서 힘이 쏟아 오른다. 가능성이 없으면 가능성을 만들면 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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