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은 글이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창 화제일 무렵, 인도 출신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한 문장으로 샌델을 반박했다.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기보다 가장 확실한 부정의 하나를 제거하는 게 더 정의롭다.” 주류 엘리트 경로를 밟은 샌델에게 정의에 대한 추상적 사고 실험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가난과 질병의 폐해를 똑똑히 보아온 센에게 그런 사변적 질문은, 그저 사치로 들릴 수 있다. 나도, 마을 활동가로 참여하면서, 내 생각이 전복되는 중이다.
그러나 느리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화나더라도, 당장 눈 앞에 똑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그러다 어느 날 되돌아 보면 좀 진보해있다. 어제가 벌써 5ㆍ18 40주년이었다. 내가 대학교 3학면 때였는데, 벌써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쨌든 어제 여러 뉴스들을 슬쩍 둘러보면, 우리는 '진실' 쪽으로 좀 더 나아갔다. "역사적 진보란 천장을 뚫는 게 아니라, 바닥을 높이는 작업일지 모른다." 한국일보 조태성 문화부장의 멋진 문장을 어제 만났다. 그의 말을 좀 더 공유한다.
"진보란 무엇인가. 센의 목소리를 빌자면,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러저러하지 않으면 진보가 아니다’라는 식의 본질적 규정을 가지고 사고실험을 하는 건 실제적 진보에 도움이 안 된다. 그보다는 차라리 구체적인 작은 무언가를 쌓아 나가는 일에 집중하자. 진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만 집착하면, 남는 거라곤 그저 지상의 이 모든 거악(巨惡)을 일거에 소탕할, ‘진보 메시아의 강림’을 기원하는 일 밖에 없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다."
무언가를 쌓아가는 일에 집중하자고 하면서, 나는 요즈음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면서 나는 많은 이웃 주민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에, 그들로 부터 책에서 읽지 못한 여러 생각들을 만나면서 나는 크게 놀라기도 한다. 어제는 주말 농장을 하면서, 고라니 등 유해 동물들을 막으려고 담장을 높이 쌓기보다는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야채를 밭 주변에 만들어 주는 것이 모두 함께 사는 길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배제하고, 폐쇄적인 사고보다 포용하고, 개방적인 생각이 더 나은 길이라는 것을 사변적으로 알았는데, 실제 고라니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나는 몰랐었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어제 늦은 오후에는 어느 여름 날처럼 강풍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었다. 그런 날 나에게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사람이 그리운 날"이 된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출렁이는 와인처럼/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은 지난 일요일에 딸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한 식당 앞에서 만난 패랭이꽃이다.
사람이 그리운 날/강초선
마음 지독히 흐린 날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한 다발의 꽃처럼
목적 없이 떠난
시골 간이역에 내리면
손 흔들어 기다려 줄
한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우체통같이
내 그리운 마음
언제나 담을 수 있는
흙 내음 풀냄새가 아름다운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하늘 지독히 젖는 날
출렁이는 와인처럼
투명한 소주처럼 취하고 싶은
오솔길을 들면 기다린 듯
마중하는 패랭이꽃 같은
제비꽃 같은 작은 미소를 가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 빈 의자처럼
내 영혼의 허기 언제나 쉴 수 있는
등대 같은 섬 같은 가슴이 넉넉한 사람
그런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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