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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름다운 빛은 눈부시지 않는다.'

231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4월 5일)
어제부터 봄비 치고, 비가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내렸다. 봄비 소리를 들으려고 아침에 나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도전을 했다. 봄비가 한 여름 장마처럼 내렸지만, 그래도 가뭄에 단비라 예뻤다. 비는 자기 차례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이다. 여름 비에 열매들이 튼실해 지고, 가을 비에 나뭇잎 보내고, 훤하게 벗은 나무에 결을 주는 겨울 비 내리듯이, 봄비가 내리면,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봄비 1 /김용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봄비에 차분해진 마음으로, 오늘 아침은 노자 <<도덕경>> 제58장을 읽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이다. 노자의 '반전(반)의 역설'이 잘 나타나는 장이다. 정치가 느슨하면, 반대로 백성은 순박해 지고, 정치가 빡빡하면 반대로 백성은 교활해 진다. 백성을 억압하고, 간섭하고, 부리려고 하면, 백성은 지도자와 대립하며 교활하게 빠져 나갈 방법을 찾아낸다. 반대로 백성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내버려 두면 백성은 순박한 백성이 되어 지도자를 더욱 따르게 된다. 그러니 지금의 나쁜 것은 좋은 것이 되고, 지금의 불행은 행복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반전의 역설'이다. 그래 이 장을 우리는 "화에는 복이 기대고 있고, 복에는 화가 엎드려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아니면 "광이불요(光而不耀)"를 제목으로 달 수 있다. '아름다운 빛은 눈부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는 그냥 앞선 57장의 메시지와 같이, 이 장의 주된 메시지도 "무위지치(無爲之治, 하는 것 없이 다스려짐)"로 볼 수 있다. 원문을 읽어 본다.
 
其政悶悶(기정민민) 其民淳淳(기민순순): 정치인들이 한가하고, 정치가 느슨하면 백성은 순박해 진다.
其政察察(기정찰찰) 其民缺缺(기민결결): 정치인들이 분주하거나정치가 빡빡하면 백성은 교활해 거나 어리석어 진다.
 
"민민(悶悶)"과 "찰찰(察察)", "순순(淳淳)"과 "결결(缺缺)"은 '도'와 '비도'를 대립시켜, 전자인 '도'를 강조하는 노자 특유의 수사적 표현이다. "민민"과 "순순"은 "무위지치"의 '도'가 실현되고 있는 상태를 뜻하고, "찰찰"과 "결결"은 '유위'로 인해 세상이 도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민민(悶悶)"과 "찰찰(察察)"은 제20장에서도 나왔다. 노자는 도를 깨우친 자신을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민민"에 비유했고, 도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들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찰찰"에 비유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백성들의 삶을 미주알고주알 챙기는 정치인이 더 훌륭하지만 노자는 오히려 백성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정치인이 더 훌륭하다고 말한다. 적극적 개입과 통치보다는 위임과 자치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禍兮福之所倚(화혜복지소의) 福兮禍之所伏(복혜화지소복): 화에는 복이 기대고 있고 복에는 화가 엎드려 있다.
孰知其極(숙지기극) 其無正(기무정): 누가 그 지극함을 알 수 있겠는가?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이란 없다.
正復爲奇(정복위기) 善復爲妖(선복위요): 올바름이 변하여 그른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하여 요망한 것이 된다.
人之迷(인지미) 其日固久(기일고구): 사람의 미혹됨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是以聖人(시인성인): 그러므로 성인은
方而不割(방이불할) 廉而不劌(염이불귀) 直而不肆(직이불사) 光而不燿(광이불요): 모가 나도 자르지 않고 날카로워도 벼리지 않고, 곧지만 너무 뻗어 나가지는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단어가 "무정(無正)"이다.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타인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마라는 거다. 네가 옳다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그른 것일 수 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함부로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마라는 거다. 사랑한다면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간섭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세상은 저절로 돌아간다는 거다. 정답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낯선 말이다. 그러나 노자는 "기무정(其無正)",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답이 되고("正復爲奇"), 지금 좋다고 하는 것이 나쁜 것이 된다("善復爲妖").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모르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人之迷")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오래되었다("其日固久")는 거다.
 
혼돈의 세상이 질서의 세상으로 변하자 세상은 정답을 만드리 시작했다. 노자는 이런 질서의 세계가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을 짓밟고 무너트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자는 정답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답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
 
내가 반듯하다고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내가 청렴하다고 그 상대방을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정직하다고 상대방을 비방해서는 안 되고, 내게 빛이 있다고 상대방 눈을 부시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행한 모든 것은 결국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권력자다 권력을 무차별하게 행사하면 그 피해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선한 행위은 선한 결과로 나에게 돌아온다. 지금 나에게 유리하고 좋다고 결과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잘 나갈 때 겸손해야 한다. 행복이 나가올 때 경계해야 한다. 높이 올랐을 때 몸을 낮춰야 한다. 누가 그 끝을 알 수 있겠는가? 행복 뒤에 숨어 있는 불행을, 불행 뒤에 기다리고 있는 행복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정답은 없다. 지금을 살면서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노자는 빛(光)으로 지도자의 처신을 강조한다. '빛을 줄여 세상의 눈높이에 맞춰라'는 "화광동진(和光同塵)"과 '빛으로 상대방의 눈을 부시게 하지 말라'는 "광이불요(光而不耀)", '너의 빛을 사용하여 원래 빛으로 돌아가'는 "용기광복귀기명(用其光復歸其明)"으로 말하였다. 눈이 부신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은은한 빛으로 모여든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눈부신 빛을 발하지 않는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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