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9일)

코로나 확산,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도발 등 악재들이 겹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길어지는 팬데믹에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힘들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낭포성 섬유 질환이라는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태어난 클레어 와인랜드가 21살이라는 짧은 삶을 마감하면서 했다는 다음 말을 소환하고 위안을 얻었다. “인생이란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인생은 자신이 뿌듯해 할 수 있는 삶을 살라고 있는 거예요.” 인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뿌듯한 삶을 사는 것이다.
너무 어려워 하지 말자. 작은 것이라도 내가 뿌듯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처럼 말이다. 나는 그의 이름처럼 살 생각이다. 그의 이름은 『중용』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라 한다. '거이'는 '거할 거+평범할 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접고, 오늘도 노자 <<도덕경>> 깊게 일고 공유한다. 제14장 읽을 차례이다. 제25장과 함께 도(道)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잘 쓰여진 일종의 노래 같다. 원문 없이 한국어로 옮겨 본다. 어떻게 도의 실체(實體)에 다가설 수 있을 까?에 대한 고민이다.
視之不見(시지불견) 名曰夷(명왈이),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 빛 없음, 아득함)라 하고,
聽之不聞(청지불문) 名曰希(명왈희),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 말 없음, 아리송함)'라 하고,
搏之不得(박지불득) 名曰微(명왈미),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 꼴 없음. 여림)'라 한다.
此三者(차삼자) 不可致詰(불가치힐), 이 세 가지(이, 희, 미)는 코치코치 캐물을 수 없다.
故混而爲一(고혼이위일), 그러므로 뭉뚱그려 하나로 삼는다.
其上不曒(기상불교) 其下不昧(기하불매), 이 '하나'라는 것은 그 위는 밝지 않고, 그 아래는 어둡지가 않다.
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아스라하고 아득하여 이름 붙일 수 없어,
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다시 물체 없는 데(무물, 無物)로 돌아가니,
是謂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無物之象(무물지상) , 이를 일컬어 형상 없는 형상(모습 없는 모습)이고, 물체 없는 형상이라 한다.
是謂惚恍(시위홀황), 이를 일컬어 황홀(恍惚,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여 알기 어려움)이라 한다.
迎之不見其首(영지불견기수) 隨之不見其後(수지불견기후), 앞에서 맞이하여도 그 머리가 보이지 않고, 뒤에서 따라가도 그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執古之道(집고지도) 以御今之有(이어금지유), 옛날의 도를 가지고 오늘의 있음을 제어한다(지금의 현실을 다스린다).
能知古始(능지고시) 是謂道紀(시위도기), 능히 옛 시작을 파악하니 이를 일컬어 도의 실체로 들어가는 벼리(실마리)라 한다.
이 장에서 노자는 시각기관, 청각기관, 촉각기관과 같은 사람의 감각기관으로는 도를 인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道)란 아득하고(夷), 희미하고(希), 미세(微)하다. 그래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없다. 도란 이 세 가지 요소가 하나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모양과 형체가 있긴 있지만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다만 황홀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1장에서는 미묘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황홀이라는 단어를 썼다. 의미와 맥락은 같다. 도란 끝없이 이어져 결국 무(無)의 상태로 수렴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인지할 수 없다. 다만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노자를 읽는 것은 인문적 지식을 통해, 우리의 일상이 인문적 삶이 되게 하자는 거다. 도(삶의 길)의 근본자리는 결국 없음(無)의 세계이다. 그러나 도는 그 자체 형상이 없고, 모양도 없지만 도는 모든 형상, 모든 모양을 가능하게 하는 형상 자체, 모양 자체이다. 이렇게 말로만 엮어 나가도 어질어질하고 아물아물한데 도 그 자체는 오죽하겠는가? 그야말로 앞도 뒤도 모르는 두루뭉수리 같은 존재 아닌 존재로서,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무엇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리송하고 신비스런 도이지만 그 도를 가지고 그 원리에 입각해서 현상 세계의 사실을 대하라고 한다. 그러면 태고의 시원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유의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해 그것들의 근원이 되는 비존재, 무의 세계를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도의 본질로 들어가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이다. 오강남의 주장이다. 어렵지만, 여러 번 읽어 보면, 도를 지켜 현재를 다스리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구도자(求道者)들을 위한 하나의 수행 기도문 같다. 원문과 함께, 정밀 독해는 블로그로 옮긴다.
기도문 이야기를 하니까, 요즈음 SNS에 떠다니는 개딸(개혁의 딸)들의 기도문이 생각난다. 여성들이 자각했으니, 절망의 시간은 끝났다고 본다. 나는 늘 우리나라 여성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메달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은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난 깨딸들을 믿는다. MZ 세대들의 시대가 될 것이다. 믿는다. 이게 도이다. 음양의 순환이다. 개딸들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두려워하게 하시고/기업인들은 사람을 존중하게 하시며/언론인들은 진실을 말하게 해 주시고/법조인들은 양심을 지키게 하소서!"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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