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3월 29일)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그러더니 김 최고위원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보수단체인 ‘북미자유수호연합’이 주최한 강연회에 참석해 “전광훈 목사께서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 통일했다”고 말했다.
예수는 1세기 유대사회의 금기를 깨뜨렸다. 당시 유대인들은 신을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거룩한 존재'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무한한 간극이 있다고 믿었다. 반면 예수는 신이 예루살렘 성전이나 율법에 감금된 화석화된 교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자비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과 동물 안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예수는 '자신과 신이 하나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다. 그는 더 나아가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행위가 바로 ‘신’이라고 선언했다. 유대인들은 이 거침 없는 청년의 생각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 당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은, 특히 당시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은 그런 건방진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처단했다. 예수가 신의 경계를 침입하였다는 이유이다.
예수는 '나를 예배하라'라 단 한 번도 말한 사실이 없다. 예수는 '나를 예배 하라'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6장 24절)고 말했을 뿐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교회에 나와 예수 이름을 외치며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예수가 지향한 가치를 본받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과 예수의 삶과 가치를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예수의 삶과 가치를 따른다 말할 수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사람"(마태복음 5장 14-14절)이라고 말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처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 커녕 세상에 코로나를 전파하여 국민을 위협하는 흉기로 전락했다.
예수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마태복음 5장 13절)라 말씀 하셨다. 맛을 잃어 길가에 버려진 소금은 쓰레기이다. 쓰레기는 쓸데만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 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일부 한국 개신교가 꼭 그런 꼴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 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 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더러운 냄새가 나지만 그때의 대화를 그대로 다시 공유한다.
전광훈 : 헌법 정신에 5.18 정신을 넣겠다. (안돼요.)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압니까. 전라도는 영원히 십프로에요. 그 말을 들은 전라도의 우파 10프로들이 더 난리요. 김기현 저거 미쳤다는 거야, 도대체가. (맞아요) 우리도 원치 않는 것을 왜 저렇게 떠드냐는 거야.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재원 : 그건 불가능합니다.
전광훈 : 불가능해요? 불가능하죠?
김재원 : 불가능합니다. 저도 반대입니다.
전광훈 : 전라도에 대해서 립서비스 한다고 한거지?
김재원 : 뭐, 표 될려면 조상 묘도 판다는 게 정치인들 아닙니까.
(웃음)
서글픔과 분노와 함께 수 없는 질문들을 떠오른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라도 있다면 저런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종교도 정치도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섬기자는 것일진대 저들은 무엇 때문에 목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가? 5·18민주화운동과 전라도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하늘도 노할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앞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민주화투쟁을 조롱하고, 어렵사리 이뤄낸 사회적 합의를 짓이겼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고 했던 목사와 신도들의 표를 예매하겠다는 ‘정치 거간꾼’은 그렇게 눈을 껌벅이며 웃음을 날렸다. 은밀한 거래가 들통났음에도 두 사람은 무탈하다.
목사들이 신도 숫자를 헤아리며 권력과 흥정하며 거래하고 있다. 예수를 포장하여 제멋대로 팔아먹는 자, 예수의 탈을 쓰고 거짓말로 선동하는 자는 예수 장사꾼이다. 그런 목사들이 있는 교회들은 권력, 돈, 집단 이기주의라는 귀신을 모셔놓고 아멘을 외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설 공간이 거의 없거나 좁다. 김재원, 전광훈 같은 사람들의 망언에 함께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비호하는 배후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김택근 시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도 동의한다.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는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다가 정치범으로 몰렸다. 정치를 꾸짖으니 왕이 미워했고, 사제와 로마의 앞잡이들이 증오했다. 그러므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다시 부활했다. 십자가는 의로운 저항과 희생의 상징이다. 하지만 요즘 교회는 십자가보다 부활을 강조한다. ‘기적의 예수’만을 부각시킨다. 저항은 두렵고 희생은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부활절이 돌아오고 있다. 오늘 잘 살아있음이 내일의 부활이다. 한국교회는 권력을 상대로 한 암표장사를 걷어치우고 부활하라. 죽어서 부활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부활하라." 부활절이 곧 돌아온다. 오늘 4월 9일이 부활절이다. 지금은 수난 주간이다. 걱정이다. 성서를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는 목사들, 그들을 따라 교회 밖에서 고함치는 신도들 속에서, 허세를 부리며 권력과 야합하는 무리를 한국교회는 지켜보고만 있다. 아마 자신들도 이미 권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슬픈 예수>>의 저자 김근수 종교학자가 한 말이다. “부활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현세에서 ‘부활을 사는’ 것이다. 돈·권력이 아니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 가난한 사람이 세상의 핵심이며 교회에서 존중된다는 것, 결국 인류 역사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교회가 현실에서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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