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파트 담벼락마다 장미들이 때를 만났다. 다른 동네 아파트에서 나는 장미와 찔레꽃이 함께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난 거의 자동으로 반칠환 시인의 <장미와 찔레>를 기억한다.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이다. 찔레는 장미와 함께 있다 보면, 찔레는 "슬쩍 붉은 듯 흰 듯 잡종 장미를 내밀 법도 하건만 틀림없이 제가 피워야 할 빛깔을 기억하고" 있다. 시인은 찔레처럼 "여럿 중에 너 홀로 빛깔이 달라도 너는 네 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는 아침마다 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우선 시 한편을 고르고, 그 시에 맞는 사진을 선택한 다음, 하나의 화두를 찾는다. 오늘아침은 '유니크니스(uniqueness, 유일함)'이다. 나는 이것을 들뢰즈가 사용한 단독성으로 보기를 더 좋아한다. 이는 교환 불가능 한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 스스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걸 찾아 균형점을 깨뜨려서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작용이 있어야 한다. 잘 되고 안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균형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이다. 자연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생명 현상은 그 균형을 깨는 것부터 시작된다.
‘바라고 원하는 것’은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가급적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독보적인 것이라야 한다. 독보적이라는 것은 유니크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것과 다른 것을 말한다. 그것이 새로운 엔트로피다. 그래서 힘이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힘이 된다. 나에게만 도움 되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경쟁에 지치지 말고, 가장 나다운 것이 남을 돕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왜? 다름으로 그 조직이나 사회를 더욱 빛나게 하니까 그렇다.
기존의 것을 잘 하겠다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면 학습이다. 학습이 새로운 바램을 만드는 기반은 될 수 있어도, 학습 그 자체가 유니크니스(독창성)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이 만들어놓은 발자국을 뒤따르는 것이다. 뒤따르는 것은 전술이다. 판을 새롭게 짜는 전략이 필요하다. 학습은 유니크니스를 만들어 낼 힘을 배양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니 학습은 일상적이어야 한다. 늘 공부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 공부로 뭔가가 생산되어야 한다. 그래 중요한 것이 글쓰기와 토론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치고 나아갈 동력은 역시 ‘유니크하게 바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과 경쟁을 안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내 페이스로 가는 아름다운 모험이기 때문이다.
장미에 끼어 있는 찔레꽃에서는 나는 '인비저블invisible'을 보았다. '인비저블'은 '보이지 않는'이란 뜻으로, 타인의 인정과 찬사 뒤에 숨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외과 의사 뒤에 숨은 마취과 의사. 유엔의 동시 통역사, 스타 건축설계사가 아닌 구조 공학자. 데이비드 즈와이그 가 쓴 <인비저블>에서 이 말을 알았다. 프랑스어는 '앵비지블'이라 읽는다. 형용사로 '눈에 잘 띠지 않는'이란 뜻이다. 어쨌든 인비저블 대부분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깊은 만족감 속에서 직업적 탁월성을 자랑한다. 그들의 특징은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보다, 일 자체에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인비저블이라도 단독자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롭고, 내적 기준에 따라 만족감을 얻는다.
찔레꽃에게서 배우는 아침이다.
장미와 찔레/반칠환
경복궁 맞은편 육군 병원엔 울타리로 넝쿨장미를 심어 놓았습니다. 조경사의 실수일까요. 장난일까요. 붉고 탐스런 넝쿨장미가 만발한 오월, 그 틈에 수줍게 내민 작고 흰 입술들을 보고서야 그 중 한 포기가 찔레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얼크러설크러 졌으면 슬쩍 붉은 듯 흰 듯 잡종 장미를 내밀 법도 하건만 틀림없이 제가 피워야 할 빛깔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꽃잎은 진 지 오래되었지만, 찔레넝쿨 가시가 아프게 살을 파고듭니다. 여럿 중에 너 홀로 빛깔이 달라도 너는 네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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