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공동체를 지배한 아름다운 분업 - 여성은 아이(생명)을 낳고 남성은 가치를 창조한다 - 은 제국의 등장과 함께 가부장제와 남존여비라는 지독한 지배/예속의 관계로 재편성되었다. 그러니까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이자 혁명사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은 거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의식주가 풍요로워진 대신 생명력은 한 없이 빈곤해 졌고, 전염병을 퇴치한 대신 암, 치매, 우울증 같은 나치병들이 늘어나고 있고, 손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맥을 못 추고, 자유와 평등은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나 가능할 뿐 사람들은 여전히 우열과 차별에 시달리며 서로 적대감을 키워 가고 있다.
그렇지만 고미숙은 강조한다. 모든 혁명의 성과에는 '책의 해방'이 있다고. 나도 놀랐다. 정말 그렇다. 교육이 확장되고, 또한 교육의 기회도 그만큼 더 확장되었다. 그건 앎의 해방이다. 그 앎의 원천이 책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가? 모든 권력의 원천은 담론 혹은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삶과 세계에 대한 해석이자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권력을 해체하고 특권층을 타도한다는 것은 이 '앎'의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나, 어디서나 배움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혁명을 하는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의 궁극적 비전은 앎의 해방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은 책을 읽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혁명은 누구나, 무엇이든 다 읽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디지털, 즉 ICT는 진짜 혁명이다. 디지털은 책을 시각과 묵독이라는 영역에서 해방시켰다. 나무라는 질료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열었다. 사실 책은 천지를 관찰하고 신의 음성을 듣고 대지와 교감하는 것이었다. 나무가 종이로, 책이 다시 종이 안에 들어가면서 대중화의 길을 열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책이라는 물질적 형식에 갇히곤 했다. 묵독의 대세 속에서 책의 지혜는 소리와 분리되었고,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경고한 장벽도 드높아졌다.
그러나 디지털은 앞에서 말한 모든 구속과 경계를 허물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책에 접속하는 감각을 다원 화했다. 그리고 책이 종이에서 탈영토화 하는 중이다. 디지털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성과 남성, 인종과 국경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 등의 경계를 넘나든다. 당연히 지식의 분할 선 또한 여지 없이 무너 뜨렸다. 그러나 문제는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온갖 감각적 쾌락에 빠져 중독의 늪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책의 바다를 유영하면서 삶으로 다시 떠오를 것인가 선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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