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월 6일)

<노자 함께 읽기>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중 여산 이성배 교수가 "현동"이라는 연하장(年賀狀)을 카톡에 올렸다. 노자 <<도덕경>> 제1장에 나오는 "동위지현(同謂之玄)"이 소환되었다. "같다는 것, 그것을 일컬어 가믈타고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동(同)"을 잘 이해하여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동위지현"의 앞 문장은 다음과 같다.
此兩者同 出而異名(차량자동출이이명) : 이 둘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앎으로 나와서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
同謂之玄(동위지현) : 그 같음을 일컬어 가믈타고 한다.
"동위지현"에서 "동"은 바로 앞 문장에 있는 "차양자동(此兩者同)"을 있는 그대로 반복하여 승계한 주어에 불과하다. "차양자동(이 둘은 같다)"라는 표현에서 "같다"는 "이 둘"이라는 주어의 상태를 규정한 술부로 본다. 그리고 "이 둘"은 '무와 유', '무명과 유명', '무욕과 유욕', '묘와 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분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원성의 극대치이다. 그러나 바로 그 둘은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둘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둘은 원해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둘은 이름만 달리했을 뿐 동일한 하나라는 것이다. 그 하나는 일체(一體, 한 몸)이고, 전일(全一)한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전일'한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냐? '하나'라는 것은 그 모두가 시, 공간의 '상(常)'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같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접근되면 안 된다는 거다. 오직 그 같음은 기술일 뿐으로 보라고 도올은 자신의 강의에서 강조했다. 여기 "동"은 무와 유, 무형과 유형의 세계가 하나로 된, 노미나의 분별을 넘어선 혼융한 전체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리고 "현(가믈하다)"도 명사가 아니라, 영어로 '다크(dark)'라는 형용사로서 "동"을 형용하는 것으로 보라 한다. 그것이 다크하기에 가믈가믈한 것이다.
"현동"은 "습상(習常)"과 연결된다. 그래 2023년의 사자성어로 나는 "현동습상"으로 정해, 보다 더 온전한 삶의 해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삶을 생각이다. "현동"의 도를 보게 되니 자신이 밝게 되고(明), 도를 간직하므로 부드러워지는(柔) 것이다. 명으로 돌아가면 몸에 재앙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밝게 깨달으면 강하게 되고, 강하면 위태롭지 않고, 위태롭지 않으므로 몸에 재앙을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습상(習常)은 진리에 대한 이런 깨달음이 습관처럼 몸에 익어 항구적 상태에 도달한 것을 일컫는다.
완전이 아니라, 온전을 꿈꾼다. 한 부자가 고기를 요리하여 나누지 않고 자신의 몸에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만 일삼는다. 사람들이 맨 처음에는 고기 한 점을 얻어 먹기 위해 줄을 섰으나, 그가 구두쇠란 사실을 알고 그의 곁을 떠나간다. 부자는 고기가 썩는 줄 모른다. 악취에 익숙해 자신의 몸에서 썩은 고기(腐) 냄새가 나는 줄 모른다. 그러다가 그가 고기를 나누어 먹겠다고 사람들을 불러 고기를 진열(陣列)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기가 이미 부패(腐敗)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진부(陳腐)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은 왜 생기는 걸까? 깊이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참견한다. 배철현 교수는 진부한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나열한다. 진부한 사람은
- 다른 사람의 안녕이나 입장을 헤아릴 능력이 없다.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본능, 자신의 필요 그리고 자신의 변덕이다.
-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지적으로 우월하고 중요하다고 착각한다.
-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인정하지 않거나 폄하한다.
-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결점이나 한계를 보지 못하는 장님이다.
한 마디로 이런 사람들은 오만하다. 이 오만의 반대는 겸허(謙虛)와 겸손(謙遜)이다. 그건 "곡즉전"의 태도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면 비로소 빛나게 될 것이고,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면 오리려 남들로부터 박수를 받게 된다. 겸손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나고, 그 생각이 빛날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22장이 겸손에 대해 잘 가르쳐 준다. 천천히 읽으면 맛이 나는 장이다.
휘면 온전할 수 있고(曲則全 곡즉전),
굽으면 곧아 질 수 있고(枉則直, 왕즉직),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窪則盈, 와즉영),
헐리면 새로워지고(敝則新, 페즉신),
적으면 얻게 되고(小則得, 소즉득),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多則惑, 다즉혹).
그러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고 세상의 본보기가 됩니다(是以聖人抱一 爲天下式, 시이성인 포일, 위천하식).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기에 밝게 빛나고(不自見 故明, 부자견 고명),
스스로를 옳다 하지 않기에 돋보이고(不自是 故彰, 부자시 고창),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不自伐 故有功, 부자벌 고유공),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갑니다(不自矜 故長, 부자긍, 고장).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하늘 아래 그와 다툴 자가 없다(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옛말에 이르기를 휘면 온전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어찌 빈말이겠습니까?(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고지소위곡칙전자 기허언재)
진실로 온전하여 지는 것들은 모두 도로 돌아간다(誠全而歸之, 성전이귀지).
나는 이 "곡즉전(굽어서(曲) 온전할(全) 수 있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길도 강(江)도 나무도 적당히 휘어져 있어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 또한 땅 속의 온갖 나무 뿌리도 알맞게 굽어서 척박한 땅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 그러니까 "휘면 온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하려면 휘어져야 한다. 들판의 풀잎들을 보면 그렇다. 바람이 불 때 휘어지지 않는다면 뿌리에 뽑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무가 구부러져 쓸모없어 보이면 잘리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남을 수 있는 거다. 살아 가는데 융통성, 유연성을 유지라는 말로도 이해된다.
노자 <<도덕경>> 제52장에 나오는 "습상"이라는 말은, 오늘 오전에 제52장을 함께 읽고, 내일 <인문 일지>에서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 아침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을 함께 다시 읽는다. 구부러진 길이 온전(穩全)으로 가는 길이다.
구부러진 길/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유성관광두레협의회 #사진하나_시하나 #이준관 #현동 #습상 #온전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 겨울의 시/박노해 (0) | 2023.01.08 |
|---|---|
| 나무 기도/정일근 (0) | 2023.01.08 |
| 시를 쓰는 시간/박수소리 (0) | 2023.01.07 |
| 갈대 등본/신용목 (1) | 2023.01.07 |
| 새해에는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이해인 (0) | 202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