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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친구 시골집에 딸과 같이 가서 배 과수원 일을 도와주었다. 내 할 일이 많았지만, 다 때가 있는 거라, 나는 기꺼이 시간을 냈다. 산다는 것은 '비틀기'라는 게 내 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모든 시도들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는 율동이다.

우리는 우주가 완벽한 원운동을 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케플러는 행성이 원운동을 하지 않고 타원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원은 기하학적 관념으로만 존재하는 조작된 진실일 뿐이다. 진실은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 원에는 에너지가 없지만, 타원에는 힘이 있다. 평면적이고, 정지된 지성에게 힘이 포착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어떤 존재에나 '동사적인 삶'으로 힘을 일으키면, 절대 균형이 깨지고 뒤틀림이 일어난다. 타원이 그렇다. 균형을 깨는 탄성(彈性)이 바로 힘이다. 그래 봄을 영어로 Spring(용수철)이라 하는가 보다. 동물들이 먹이감을 발견하면, 즉시 몸을 비틀어 자신의 절대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탄성을 준비하는 것처럼, 봄들도 균형을 깨고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움직임의 이유는 생존이다. 생존을 도모하는 최초의 활동을 우리는 분류로부터 시작한다. 효율적으로 생존하도록 우리는 분류한다. 그래 하루 종일 어린 배들을 속아 주었다. 그린 하비스트(Green Harvest), 파랗고 어린 배를 희생시키며, 잘 자랄 배를 더 잘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로는 방덩쥐 엉 베르트(Vendange en Verte)라고 한다. 아니면 에끌레르시사쥐(Eclaircissage)라고도 한다. 한국 말로 직역하면, "밝게 만들어 주기"이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남은 것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눈부신 봄때문에 분류된 어린 배가 안쓰러웠다. 봄은 보라고 봄이다. 봄은 그저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을 보는 것이다. 눈이 부시다. 그래 시인은 봄엔 사랑하지 마라고 한다. 냉정하라고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금기 사항이라 한다. 그런데, 금기는 깨라고 있는 거다.

금기의 일반적 해석은 그것을 '신적 질서'의 발현으로 본다. 그 금기를 깨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의 발현이고, 동시에 신적 질서가 얼마나 엄중한가를 말하는 것이다. 금기는 동시에 유혹이다. 욕망은 금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금기가 욕망을 부른다. 욕망이란 금지된 것을 갖고 싶다는 뜻이다. 신은 안다. 유혹에 넘어가 금기를 깰 것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신은 자신의 영토에 인간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금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오만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용기이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 존재이지만, 그 한계 속에 장엄하게 침몰하는 모습 그 자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래 삶은 비틀기이다.

살아 남은 어린 배야,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봄의 금기 사항/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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