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어제는 어린이 날이라 휴일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4인 이상 만나지 말라는 방역당국의 부탁에 세상이 조용하다. 나는 이른 아침에 주말농장에 나가 혼자 잘 놀았다. 밤사이 내린 비가 갠 후 아침은 막 세수를 한 어린 아이 같았다. 콧등을 스치는 바람은 말 그대로 봄바람이었고, 새들의 지저귐은 사랑의 노래였다. 야채들이 바람을 먹으며 쑥쑥 자라는 소리가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저녁에는 모처럼 사회적협동조합 <대전혁신2050>의 이사들과 진성 조합원 둘이 두 테이블로 나누어 모였다. 법인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기념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많이 반성했다. 사람을 진심으로 먼저 알아주어야, 내 말도 내 행동도 받아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살면서 기쁨 중의 하나는 크고 작은 감동과 마주할 때다.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 진심의 힘은 크고 위대하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는 “다른 사람을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평생에 걸쳐 그 말을 보물처럼 여기고 반복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심이 담긴 말만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니, 그가 나를 받아들이겠는가? 그런데 쉽지는 않다. 더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네이버 블로그는 7년 전에 포스팅한 것을 다시 소환시켰다. 그 때 나는 신영복의 <나무냐 나무야>를 읽으며, 가슴을 스치는 문장들을 필사하였던 같다. 이 문장들을 중에 "언언시시(言言是是) 정승이라고 불릴 정도로 황희는시(是)를 말하되 비(非)를 말하기를 삼갔고 소절(小節)에 구애되기보다 대절(大節)을 지키는 재상이었다"가 있었다. 디테일에 머물지 말고 본질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이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하고, 그 장점을 이야기 하도록 노력하라는 말로 삶의 지혜를 삼았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새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 속에 "언언시시"를 두고 잊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만 더 공유한다. "산판 일을 하는 사람들은 큰 나무를 배어낸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잘린 부분에서 올라오는 나무의 노기가 사람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근본(道)'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따른다. 근본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본마음(바탕)을 터득한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이런 본마음, 즉 존재의 근본 상태를 '덕(德)'이라고 표현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압도하는 힘을 갖는다.
오늘도 여러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정이 셋이나 된다. 오늘 아침 <인문일기>에서 성찰한 '진실되게 진심으로' 만나고,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 하고, '디테일보다 본질'을 생각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짧다. 실제로 우주의 법칙은 길지 않다. 오늘 아침 사진의 아카시아 나무처럼, 때가 되면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 자신의 수고로 그때 그때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긴 질문에 대한 짧은 대답/이화은
밤새워
비 내리고 아침
둥굴레순
그 오래 묵은 새촉이 불쑥 뛰쳐 나왔습니다
올봄도 온 우주의 대답이 이렇듯
간단명료 합니다
오늘 아침의 화두와 관련해서, 지난 주에 읽은 문학평론가이시고 전북대 석좌교수이신 왕은철 교수님의 글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대로 공유한다. 글이 너무 좋다. "'나는 자유로운 여자가 된 것 같아요. 새처럼 아무 계획도 없고, 새처럼 행복하고, 새처럼 깨끗하고 날개가 달린.'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이십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사람들과 사회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었다. 젊은 나이의 그녀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편지를 받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새들은 둥지를 만들고 가족을 부양하고 그들의 행복에 책임을 지죠. 당신은 그 정도까지 나아갔나요?' 인간의 눈에는 창공을 나는 새들이 자유롭게만 보일지 모르지만, 새는 그 자유를 이용하여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아 부화시켜 새끼들을 태어나게 하고, 그 새끼들이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책임을 다하는데, 당신은 그러한 책임을 져봤느냐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새처럼 자유롭다'는 표현은 다소 무책임한 말이라는 거다. 세상에 대한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현재의 자극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유를 활용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거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 깊이 생각해보라는 충고였다.
김수영 시인의 "푸른 하늘을 위하여"가 생각났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다시 왕교수님의 글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설득했고, 그녀는 부드러움 밑에 깔린 깊은 사유에 설득을 당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2차원의 세계를 사는 새와 달리, '3차원, 4차원, 5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을 사는 존재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상처와 고통, 노예상태를 없애는 데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 그는 그때까지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이후로도 그랬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직에서 젊은 나이에 해직된 뒤 시골에 살면서 강연과 집필, 유기농 농업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그와 결혼해 살면서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그리고 남자가 세상을 떠난 후 그와의 삶을 감동적인 기록으로 남겼다. 여자의 이름은 헬렌 니어링, 남자의 이름은 스콧 니어링이었다."
이 두 부부처럼 늘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이번 부는 핼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녀는 스콧 니어링과 함께 먹고 사는 데서 적어도 절반 이상 자급자족한다는 것과 돈을 모으지 않는다는 것과 동물을 키우지 않으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 '조화로운 삶'을 평생 실천한 부부들이다. 그 부부가 살던 집과 정원은 전 세계 사람들이 순례하는 여행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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