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목요일 아침이다. 그래 지난 여름에 모아 두었던 글 중에 강남순 교수의 것을 다시 꺼내 읽었다. 지난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이사회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변경을 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우리 나라는 공식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여기서 말하는 선진국이라는 판단 기준은 경제 부분이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 분야와 같이 수치화할 수 있는 '보이는 가치'의 성과만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치화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가치'의 지속적인 심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지나쳐온 인간적 가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적 가치라는 말은 우리를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래 나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아침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쓰는 거다. 올해도 오늘까지 잘 실천하고 있다. <인문 일기>를 통해, 이러한 인간적 가치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상기하고 가꾸고 확장하는 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생존만이 아니라, 존재론적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강남순 교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다음의 다섯 가지 가치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도 크게 동의하고, 강 교수의 주장을 공유하며, 다시 한 번 코로나-19의 강제된 거리두기로 하잔하고 조용한 연말에 생각해 본다. 코로나 사태로 겪으며, 잃어버렸던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거다. 코로나로 뉴-노멀의 일상을 보내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를 다시 회복하자는 거다. 사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들에 의해 우리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1) 존중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 가치는 우리가 만나는 무수한 타자를 나와 평등한 "동료 인간"으로 생각하며 존중하는 것이다.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나의 도료 인간이다. 동료 인간으로서 타자들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들 모두 나와 함께 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2) 인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여기서 인내는 기다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개입하면서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의 기대나 방식과 다른 것을 경험한다. 그러면 즉각적으로 실망을 표현한다. 타자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무수한 실망은 좌절감으로 이어진다. 자신과 타자에 대해 인내하는 것은 기다려 주고,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듯 삶의 방식 각기 다르다. 나의 기대나 기준을 절대화하고 싶은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다름을 받아들이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서로 발걸음 속도를 조정하면서 걷듯, '함께'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3) 정직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팬데믹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야기되는 불안감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세계에 도사린 다층적인 감정들과 씨름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울과 불안을 일컫는 '코로나 블루',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분노를 일컫는 '코로나 레드',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인한 깊은 좌절과 절망을 일컫는 '코로나 블랙'까지 등장했다. 두려움, 불안감, 슬픔, 비탄과 상실 등은 인간 보편의 감정들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추어서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사람들도 사실상 내면에는 이러한 감정과 힘들게 씨름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과 연결된 타자들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직의 가치를 실천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4) 친절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의 인간됨을 실천하는 것은 거창한 명제나 행동만이 아니다. 친절과 같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 직원들이 손님에게 보이는 인위적 감정 노동으로서의 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가지는 배려이며,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자를 향한 고마움의 미소와 몸짓이다.
(5) 연민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연민은 동정과는 다르다. 동정은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이다. 물론 누군 가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동정하는 사람과 동정을 받는 사람 사이에 윤리적 위계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형성한다. 동정을 받는 사람은 '어쨌든' 존재의 사다리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보다는 긍휼(矜恤)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긍휼은 가엾게 여겨서 도움을 주는 거다. 이 단어 속에서도 '위계'가 보인다. 그러나 연민은 '함께 고통을 느끼는 감정'이다.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의 아픔과 상실에 함께하고,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연대하게 된다. 연민의 가치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보는 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종류의 윤리적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 가가 겪은 아픔이나 어려움이 '왜' 생기는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넘어서기 위해 다층적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조용한 연말에 다짐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또한 서로에게 이러한 가치를 상기시키면서 이 가치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지켜내야 한다.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정치, 과학 또는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외부 세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변화만으로 우리의 삶의 질이 자동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우리의 내면 세계를 구성하는 가치들은 돈이나 과학으로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가치가 활성화되고 작동되는 사회에서 비로소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며 보다 행복한 삶의 여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길은 경제와 테크놀로지와 같이 보이는 가치의 발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가 사회에 확산되어 자리잡게 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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