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여러 나라의 '주님'을 모셨다. 낮에는 중국 '주님'을, 저녁에는 세계 '주님'과 놀았다. 그래 오늘 아침은 머리가 무겁다. 그러나 창을 여니 맑은 "봄날"이다. 5월은 노는 날이 많다. 오늘도 아무 일정이 없다. 그래 방심(放心)한 것이다. '마음'이 방학을 맞은 거다.
그래도 일상을 지배하자는 마음이 습관이 되어, 눈을 뜨자마자 이를 닦고, 혀를 닦았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잠든 내 세포들을 깨웠다. 그리고 오늘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짠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배철현 선생처럼, 나도 오늘을 나에게 만족스럽도록 만들어주는 격식(格式), 즉 시간표(時間表)를 만든다. "하루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더 나은 자신, 더 숭고한 자신, 자신이 스스로 제3자가 되어 관찰해도 ‘괜찮은 자신'을 위해 발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표'가 필요하다. 시간은 양적이지만, 시간표는 질적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시간표는 멈춤이다. 시간은 늙음이지만 시간표는 젊음이다. 시간은 객관적이지만, 시간표는 주관적이며 사적이다. 시간은 알몸이지만 시간표는 내가 오늘 갖추어야 할 의복이다." 배철현 선생의 멋진 해석이다.
나는 최근에 새로운 일상이 하나 더 생겼다. 배철현 선생의 <매일 묵상>을 꼼꼼하게 읽는 일이다. 지난 4월 10일에 그의 블로그를 보고 적어 둔 것이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일기를 썼다고 한다. 배교수는 그의 『<명상록』2권 1단락을 소개했다. “매일아침 나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오늘 나쁜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건방진 사람, 속이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그리고 적대적인 사람을 만날 것이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것이다. 나는 이들 때문에 해를 입을 수 없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며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배교수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상의 일들이 아우렐리우스를 당혹스럽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일들을 이미 예상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일어난 이유, 성가신 일들의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학교의 특징은 무작위無作爲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그를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다.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은 나에게 스승들이다."
'무작위'란 말을 들은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영어로 '랜덤(random)'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무작위'의 사전적 정의는 "일부러 꾸미거나 뜻을 더하지 아니함"이다. 어제 저녁도 예상에 없던 일이다. 재미난 "봄밤"이었다. 내 또래의 동네분을 만났다. 그래 '주님'을 앞에 놓고, 옛 이야기로 우린 취했다.
난 "수처작주 입처개진(數處作主 入處皆眞')이란 말을 좋아하고 실천한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그 곳이 진실된 곳"이란 말이다. 다시 말하면,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 주인이 되지 못할 자리에는 안 가는 거다. 그러나 더 큰 의미가 있다. '네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수처작주'를 실천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무슨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기 싫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스스로 그 상황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처작주'는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자재함'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길이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처리해 나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처작주'의 마음을 가지려면, 비교 분별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비우고,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니, 집착을 버리고 유연해지는 것이 '수처작주'의 시작이다. 미음을 비우고(분별심과 집착), 삶을 놀이로 만들면,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해진다. 그때부터 '수처작주'의 삶이 시작된다.
자아의 실현이나 완성은 장소에 좌우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소를 지배하는 자신의 사명이 결정한다. 그래 난 동네 일에 적극 개입하고, 비록 이사 온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동네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오늘 같은 "봄날에",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다. 외로워 할 일 아니다.
봄날에 1/이수익
봄에는
혼자서는 외롭다, 둘이라야 한다, 혹은
둘 이상이라야 한다.
물은 물끼리 흐르고
꽃은 꽃끼리 피어나고
하늘에 구름은 구름끼리 흐르는데
자꾸만 부푸는 피를 안고
혼자서 어떻게 사나, 이 찬란한 봄날
가슴이 터져서 어떻게 사나.
그대는 물 건너
아득한 섬으로만 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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