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얼굴 반찬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이다.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본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월 첫번째 일요일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보면, 낙타를 데리고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이 잘 가다가, 멀리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면 그 때부터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지 신기루이고 아직도 몇 십 킬로를 더 가야 하는 데 말이다. 나도 서울에서 대전을 차를 갖고 내려오다 보면, 가장 힘든 때가 대전에 거의 다 와서 이다. 보통 사고가 많이 나는 것도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이다. 긴장이 풀어진 까닭일까?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많은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 이번 연휴만 잘 넘기면 된다고 한다. 거의 막바지인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적지 근처에 오니 더 힘들고, 갈증이 난다.

그래도 농장의 잡초는 때를 노리고 쑥쑥 큰다. 어제는 뜨거운 땡 빛 아래에서 풀을 뽑았다. 작년에 풀과의 전쟁에서 진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초반에 풀을 제압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한 달 전에 모종으로 심은 상추들은 제법 컸다. 잔뜩 수확을 해, 어제 토요일은 점심과 저녁으로 상추를 너무 많이 먹었더니 속이 편치 않다. 아침 사진은 농장 가는 길에 세상과 무관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늠름한 나무를 만난 것이다. 아침 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얼굴 반찬/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1. 많은 사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얘기한다. 예측은 커녕 대응하기에도 바쁜 지금이지만 분명해 보이는 건,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원치 않아도 공유 경제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고, 언택트(Untact) 사회로의 빠른 진입으로 일상에 대한 정의도 달라질 것이다.

2. "같이 걸어가는 사람의 가치를 기억하라." 생각이 다르더라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같이'는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종교가 달라도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취향을 충분히 존중해주면서도 함께 갈 수 있다. 같다는 것은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서로의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3. 짝사랑은 내 마음에 핀 불꽃이다. 사랑을 표현하고 전달하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지만 짝사랑은 상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니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나에게 사랑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좋고 편안한 마음 그리고 그 사람도 나와 같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것이다. 사랑은 비와 같다. 가뭄에 애 태우던 농부에게 비는 기쁨, 소풍을 앞둔 아이에게는 슬픔이다.

4. 사랑은 짐을 덜어주는 것이다. 짐을 얹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건 지혜의 부족이다. 스스로 사랑이라고 규정지어도 실상 사랑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가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랑이 아니다. 그를 정말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랑의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말해도 좋다.

5. 자유는 타인의 임의적인 의지와는 상관 없는 독립적인 어떤 것이다. 자유는 타인을 통해 내 생각과 말, 행위가 영향을 받고 결정되는 속박의 반대이다. 예를 들어 노예는 타인의 의지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자유인은 사회가 규정한 법을 어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선택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6.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부정적 자유는 외부의 압박이나 간섭이 없는 행동이다. 긍정적 자유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를 이른다. (이사야 벌린, 『자유의 두 개념』)

7. 자유의지는 절제의 힘으로 균형을 잡는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미리 숙고하고, 그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상상한다. 그러니까 자유는 한 개인의 깊은 생각과 그 생각을 실행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을 때 동반되는 다양한 결과를 책임지고 감수할 때 생성되는 것이다.

8. 문화인은 고전이나 경전을 읽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눈을 통한 보기와 귀를 통한 듣기로 배우기 때문이다. 눈을 통해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을 경험할 때 배우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고전이나 경전들은 주위에 언제나 우리의 눈을 기다린다. '괴물'인 시간을 이겨낸 고전이나 경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깨달음의 수단으로 여기려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선사한다. 그때 만족은 나의 의식을 확장해 취미를 선물한다. 거기서 얻은 고상한 취미를 지닌 사람이 문화인이다.

9. 알게 하는 것과 사랑하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령 과학지식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은 과학교육이지만, 과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은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인문지식을 배우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인문학의 역할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고통받는 타인을 향한 위안과 공감을 불러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일이다. 나 자신의 존재만을 위해, 나만 잘 살려고, 내 존재만 풍성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10.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전염병에 맞서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제 임무를 다하는 동지들, ‘우리'이고 ‘우리'여야 하는 한 명 한 명이 영웅이어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살기 위해서고 살리기 위해서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유성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공광규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