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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다시 '현명(玄冥)'의 '현'자로 되돌아 온다. '현'자를 생각하면 '현관'에 대하여 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기'와 ‘저기'의 경계가 타부(taboo)이며 ‘현관(玄關)'이다. 이 경계에는 항상 괴물이 등장한다. 이 경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오랫동안 수련하고 준비하지 않은 자들을 과거로 돌려보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는 비극적인 인물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고향 테베로 들어갈 참이다. 역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도시 성문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이 앉아 있다. 스핑크스(Sphinx)는 그리스어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대상을) 목 졸라 줄이는 존재'라는 뜻이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에게 묻는다. “아침에는 네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존재가 무엇이냐?” 오이디푸스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 질문을 대답하지 못했다.

현관은 경계이다. 우리는 보통 대립된 두 면 가운데 하나를 취하는 데 익숙하다. 이 쪽 아니면 저 쪽을 택하면서 상대방에게도 그러기를 은연중에 강요한다. 이단이나 극단적 근본주의자는 두 면 가운데 하나를 취하는 사람들이다. 한 쪽을 택한 후,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순수하고 절실하고 진실한 삶의 태도로 여긴다. 두 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이것을 부정하다가 저 것에만 빠지는 것은 부정의 고착화이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이탈이다.

한쪽을 택하면 과거에 박히거나, 경계에서 서면 미래로 열린다. 한쪽을 택하면 이념 화되기 쉽고, 경계에 서면 생산적인 효과를 낸다. 한쪽을 택하면 얼굴에 짜증기가 새겨지고, 경계에 서면 밝고 환 해진다. 나는 함민복 시인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제목을 좋아한다.

스틱스(styx)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강 이름으로, 우리가 죽으면 이 강에 다다른다. 뱃사공 샤론(Charon)이 죽은 자를 태워 지하의 세계로 옮겨 준다. 스틱스는 <Boat on the river>를 부른 미국 그룹밴드이기도 한다. 스틱스는 별자리 명왕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스틱스는 신화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룬다. 스틱스하면 아킬레우스가 떠오른다. 그의 아버지는 인간 펠레우스이고, 어머니가 여신 테티스이다. 아킬레우스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어머니 여신이 그를 스틱스 강물에 담근다. 근데, 발목을 잡고 강물에 담갔다. 강물이 닿지 않아 불사의 능력에서 제외되었던 바로 그곳이 아틸레스 건이다.

스틱스 강물에 무생물이 닿으면 녹아 없어지지만, 생물은 강물에 닿은 부분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된다. 왜 그럴까? 스틱스 강물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흐르고, 경계에 서 있는 자는  강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 보통 경계에 서 있으면 불안하다. 반면, 어떤 한 진영에 있으면 우리는 편안하다. 그 불안이 우리를 고도로 예민하게 유지해 주고, 그 예민성이 경계가 연속되는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감지 능력을 우리는 '통찰(insight)'이라고 부른다.

통찰력이란 "탁! 하면 아는 것"인데, 세계의 흐름을 단순히 이성적인 계산 능력으로 만이 아니라, 감성이나 경험, 욕망이나 희망 등의 모든 인격적 동인들을 일순간에 발동시키는 능력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오는 고도의 불안을 감당하며 키워 낸 예민함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경계에서 떠나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순간, 그 세계를 전부로 착각하고, 우리는 그 프레임에 갇혀 굳어버린다. 이 세계를 참과 거짓, 선과 악으로만 본다. 자신의 관점에서 맞는 것만 참이고 선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고 악이다. 이 관점이 바로 이념이고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세계는 변한다. 한 순간도 멈추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이 변화의 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변화는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흐름은 경계가 지속적으로 중첩되는 과정으로, 흐르는 것은 부드럽다. 변하는 것은 유연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어 있는 것은 뻣뻣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며, 변화가 멈추고 화석 화되어 있는 일이 죽는 일이다. 산 자의 부드러움을 정지시켜 딱딱하게 굳도록 하는 것이 이념이나 신념 같은 것들이다. 세계가 변화라면, 경계의 중첩이라면, 그 흐름을 그 흐름 그대로 마주하여야 한다. 왜? 그래야 그 변화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생명이다. 생명은 경계의 중첩이 흐르고 또 흐르는 과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생명체에 불사의 능력을 주는 스틱스 강은 우리에게 말한다. "경계에 서라! 그래야 흐를 수 있다! 그래야 산 자이다! 그래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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