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4월 29일)

나는 동네에서 몇 년째 주말 농장을 가꾸고 있다. 그 이름이 <예훈 농장>이다. 이름이 거창한데, 동네 예비군 훈련장 옆에 있어서 그렇게 진 거다. 그러나 요즈음은 주중에도 간다. 코로나-19 덕에, 농장의 야채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 한다. 그래 자주 가니 채소들이 건강하다. 그곳에 가 새싹과 이파리들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이렇게 조그만 공간에서도 생명을 무성하게 키우는 땅이 참으로 위대하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나오게 해주는 조그만 땅이 무척 고맙다.
어제는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한 영화 <미나리>를 생각하며, 미나리를 수확해 왔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미나리는 오리고기와 함께 구워 와인과 마시면 일품이다. 어제는 몽골에서 온 젊은 부부를 초대해 같아 먹어 더 즐거웠다. "미나리는 참 좋은 거란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하든 다 먹을 수 있어. 맛있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wonderful)이란다." 영화 <미나리>에서 한국에서 온 순자 할머니(윤여정)가 손자 데이빗에게 한 말이다. 척박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의 삶은 힘들게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을 보는 듯하다. 누구든 향유할 수 있고, 약도 되는 원더풀 미나리. <미나리>를 만든 정이삭 감독은 왜 영화제목을 <미나리>로 했는지를 묻자 "미나리는 첫해는 수확이 안 나요. 다음 해부터 수확이 가능하지요. 저희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분의 삶은 매우 어려웠고,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죠. 부모님과 우리 세대가 성공을 맛볼 수 있었어요. 그 희생을 기리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미나리는 씨를 심으면 첫 해에는 성장하지 않고 주변 흙을 정화한 뒤 이듬 해부터 푸르게 자란다. 영화 <미나리>에서 좋았던 대사는 "우리가 서로 구해주자"고 하는 부부의 대사이다. 힘든 일상으로 그들은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할 수 없었지만, 친정 어머니 순자(윤여정)의 사랑으로 회복되었다. 미나리처럼, 가족은 대단한 구원을 이루기는 어려울지라도. 가족은 쉬이 해체되지 않고 황량한 터에서도 삶을 이어갈 것이다.
주제를 좀 바꾸어 <미나리> 영화 이야기를 해본다. 영화가 불편하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제연구소 소장에 의하면, 한국 이민자들은 단순노동을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들이 있다고 한다. "한국 이민자 중에는 어제와 내일의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을 단순노동을 꿈의 실현을 위한 중간 과정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성우제)고 한다. 영화 속에서 "제이콥이 50에이커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 "[아내가] 3년 후에는 부화장에 나갈 필요가 없는" 목표를 가졌듯이 한국 이민자들은 대체로 더 나은 삶을 살려는 꿈을 늘 꾸고 있다"(성우제)고 한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
우리는 성공담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성공 이후 행복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소중한 일상에 대해선 살피지 않는다. 외적 기준만으로 '위너'와 '루저'를 판정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 '성공이란 무엇인 가'에서는 성공에 대해 다양한 정의를 내린다. '자주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사람들에게 칭송 받고 아이들의 애정을 얻는 것, 아름다운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남에게서 좋은 장점을 발견하는 것 (…)"이라 했다.
성공한 어느 컨설턴트가 한 휴양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곁에는 마을 어부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컨설턴트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좀 더 열심히 하면 훨씬 성과가 좋을 텐데요." 나에게도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부는 컨설턴트에게 되물었다. "성과가 좋으면 뭐가 좋은데요?" 컨설턴트는 한심한 듯 대답했다. "성과가 좋으면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벌어 투자하고 벌만큼 벌면…" 어부가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 다음에는 요?" 컨설턴트는 무식하다는 듯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다음에는 좋은 곳에 가서 쉬면서 사는 거지요." 어부가 말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나도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그 어부처럼.
그리고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국적을 떠나 중국인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및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분을 휩쓸었다. <노매드랜드>는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사가 제작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출한 작품이다. 영어로 노매드는 프랑스어로 하면 노마드이다. 노마드는 초원에서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을 뜻한다. 들뢰즈가 썼던 용어이다. 노마드의 생활 철학을 '노마디즘'이라 한다.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 쓰인다.
이 노마드라는 말에 4차 산업혁명의 기속화로 디지털 문화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도 나왔다. 자크 아탈리는 자신의 책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고 말하였다. 노마드는, 한국 말로 하면, 유목민이다. 유목과 유랑은 다르다. 유랑이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흘러가는 거라면, 그래서 공간은 끊임없이 변이하지만 존재성은 달라지지 않는 거라면, 유목은 길위에서 타자를 만나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는 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는 것일까?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양애경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이 이 生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농경시대 이전의 고전적 노마드(nomad, 유목민)와 달리 디지털 노마드는 인류 역사에서 아주 최근 등장한 새로운 종족이다. 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특정 장소에 매이지 않고 원격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남의 일 같았는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겪어보니 그게 아니다.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이런 현실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가 1998년 펴낸 미래전망서 『21세기 사전』에서 노마드에 대한 설명은 “다음 세기(21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아직 <노매드랜드>를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노마드는 그저 인생의 벼랑에 내몰린 이들이 아니고, 상대에게 도움을 줄 때면 당당히 나에게도 도움을 달라고 요구하는 독립적인 사람들이자, 길 위에서 생활하는 노하우를 교환하고 자연 친화적 철학을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라고 한다. 아탈리가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로 노마드를 꼽으면서 강조한 것도 이같은 박애나 타인에 대한 환대 등의 덕목이다. 그에 따르면 노마드는 방랑이나 유랑이 아니라 “함께 나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민자와 토착민, 유목민과 정착민은 지구촌 곳곳에서 그 경계가 뒤섞이고 있으며, 동시에 서로에 대한 강한 배척과 경계심도 불거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은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 ‘미나리’의 한국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미국 노마드의 이야기 ‘노매드랜드’의 중국 출신 감독 클로이 자오에게 감독상을 안겼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양애경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노마드의 라이프 스타일을 다룬 국내 첫 저작물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노마드』를 쓴 손승관 저자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면서 불가피하게 삶의 방식과 노마드적 삶으로 변화했다"고 진단하고 아날로그 시대가 토지, 자본, 노동이라는 유형의 자산의 시대였다면, 디지털 시대는 지식, 기술, 정보라는 무형의 자산 시대라고 정의한다.
내가 추구하는 삶이 "노마드"의 삶이다. 그런 노마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8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모두 속한다. 그래 나는 '노마드'이다.
(1) 나는 일도 여가처럼 하고, 직장에서도 휴가지에서 처럼 산다.
(2) 나는 매사에 창의적이다.
(3) 나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이다.
(4) 나는 인문학적 소양이 깊다.
(5) 나는 소유 대신 경험을 중시한다. 가지는 것은 끝이다. 임대 비즈니스에 매달린다.
(6) 나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7) 나는 상품 가치가 뛰어난 지식 사업가이다.
(8) 나는 감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연줄은 가라! 생각이나 지향점이 같으면 형제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집 없이, 아니 자동차를 바퀴 달린 집 삼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는 노매드, 즉 노마드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디지털 노마드처럼 원격으로 일하는 대신 일자리를 찾아 차를 몰고 이동한다. 연말에 밀려드는 상품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직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는 아마존이나, 여름 시즌 캠핑장 관리자를 단기적으로 고용하는 국립공원 같은 곳이 그런 일자리다. 이런 노마드가 급증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이들을 다년간 취재한 미국 기자 제시카 브루더가 쓴 『노마드랜드』 따르면, 그 상당수가 은퇴 연령대의 나이 든 사람들이다.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집세를 감당할 수 없거나, 경제위기로 중산층에서 추락한 이들이다. 우리도 고드 그런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찰스 핸디는 자신의 책, 『코끼리와 벼룩』에서 "100세 시대에 코끼리에 붙어사는 것은 불가능하니 '1인 기업가'처럼 강인한 벼룩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뭍사람의 다리와 뱃사람의 다리가 다른 것처럼, 노마드의 다리는 정착인의 다리와 달라야 한다. 뭍사람은 배를 타면 작은 파도의 출렁거림에도 일을 못한다. 그러나 뱃사람은 균형감각을 잡아 폭풍우 속에서도 일을 한다. 노마드는 뱃사람처럼 심리적으로 굳건한 다리를 가져야 한다. 고체가 되어서는 안되고, 액체가 되어 늘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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