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디지털 전환이 거의 모든 기업의 화두이다. 결국은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고 활용도 높은 데이터를 관리해야 성공한다.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무턱대고 쌓아 놓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경험 있고 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모으고 시스템은 가볍게 조금씩 넓혀 간다면 좀 더 안전하게 혁신을 실현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미래의 기회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한 조찬 강연에서 KAIST 정재승 교수가 한 말이다. 여기서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월요일 아침인데,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가 너무 사유를 하지 않는다. 그래 좀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정리하고 싶어서, 생각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주제가 '안다'는 것 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르다는 문제이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뇌는 감각되는 것과 지각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구분된다. 인간은 감각(感覺, sense)된 것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래 우리는 감각된 것들에 대한 분류(classify, cluster)하거나 범주화(categorize)하면서 감각된 것에 대한 간접적 표현만이 가능하다. 그것을 우리는 그것을 '지각(知覺, percept)'이라 한다. 그러니까 감각된 것에 대한 표현은 지각된 것들 간의 관계성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인식(認識, recognize)이라 한다.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이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을을 우리는 인지(認知)라고 하는 데, 인시과 인지와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사실(fact)을 접하는 것(cognize)으로부터 우리는 관계성을 재발견(re-cognize)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안다'는 것이다. 인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분류'이다. 우리는 생존을 도모하는 최초의 활동을 분류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효율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분류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구분에 지속성을 부여하여 전승하기도 한다. 이 분류와 구분을 통해, 우리는 경험을 통제하는 능력을 축적한다. 이를 우리는 '지적활동'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적이라는 말은 경험을 통제하는 일관된 형식이다. 인간의 성숙도 지적인 능력의 개발과 연관된다. 그러니까 지적인 사람이 더 잘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지적인 사람들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있다. 은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시를 쓰거나 읽는 사람이다. 지적인 활동 자체를 확장하여 분류의 틈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훌쩍훌쩍 건너뛰는 것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이질적인 것들을 서로 연결하여 소통시켜 버린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의미의 확장은 통제 영역의 확장이다. 은유를 통해 세계를 넓혀나가는 이가 '위대한 개인'이다.
반면, '이해(理解)한다'에서 이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이치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왜 그러한 지를 끌어낸다'는 뜻이다. 구조와 작동원리로 왜 그러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수평적' 관계보다도 더 심층적인 관계를 알아내야만 가능하다. 현상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수평보다 아래에 서야 한다 그래 영어로 이해한다는 말이 'under-stand'이다.
안다는 것만으로 타자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아는 것 이면을 더 알아야 이해가 간다. 그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대로 감각(感覺)할 수 있는 ‘감성(感性)’이 필요하다. 감성이란 내 마음을 지우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는 살아있는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열린 소통'의 마음이다. ‘소통(疏通)은 나를 먼저 열고 통한다는 의미다. 나를 연다는 것은 나의 감각의 문을 연다는 의미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의 감각만이 새로운 것을 기억하게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롭게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한다.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많이 알고 이해도가 깊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이 높다는 것이다.
수많은 우연성이 존재하는 세상에 대하여 통제력의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신체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변화는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전승된다.
이것이 나를 먼저 열어야 하는 이유이고, 내가 먼저 열고 수많은 감각을 접해야 하는 이유이다. 수많은 시공간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고,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동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바람은 그것을 아는 것 같다. 그래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지금까지 논리를 견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사유의 폭과 논리의 정교함을 보아야 한다. 그래 오늘 아침은 길게 이야기 한다.
정리하면, 무언가를 알고, 더 나아가 이해(理解)하는 길은 나의 감각의 지평을 확장 시키고, 그 경험으로 감성, 아니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사유를 더하면, 우리는 통찰력(insight)을 키울 수 있다. 살면서, 문제에 직면하면 그걸 '탁' 하고 알 수 있는 것이 통찰력이다. 이런 '알아차림'은 체험과 개념, 아니 경험과 이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이란 말의 정의는 ‘기억과 사유가 일치된 앎'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기억은 체험에서 나오고, 사유는 개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알아차림은 경험이나 체험에 개념이나 이론이 뒷받침되면 더 잘 작동된다. 그러니까 알아차리는 것도 조건이 맞아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오늘도 열심히 나는 공부한다. 인문학도 과학이다. 그래 인문과학을 프랑스어로 Sciences humaines라고 한다.
바람은 주변을 잘 이해하기에 길을 찾는다.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 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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