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2021년 4월 28일)

어제는 ‘윤며드는(윤여정에 스며드는)’ 하루였다. 그녀처럼 늙고 싶다. "윤여정의 연기도, 작품도, 매일 좋아하는 사람과 일하는 건 사치라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여정도 좋았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윤여정처럼 늙어가는 것’을 통해 나이듦의 새로운 길을 보여준 것이야말로 대체불가한 윤여정이 해낸 일이다."(국민일보 김나래 기자) "나이든 여성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하는 어떤 한 명의 예술인, 연예인, 배우라는 느낌이 컸다. 나이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입고 싶어하는 것, 하고 싶어하는 것, 도전하고 싶은 것에 의해 정의되는 사람이다.”(나영석 PD)
2020년 지난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작품상 및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에 이어,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일흔 넷의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102년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유니크'했다는 점이다. 미국 언론들도 그녀의 매력적인 수상 소감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평하였다. 사실 그녀의 유쾌하고 재치 있는 수상 소감은 준비를 잘 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녀는 꽃 길만 아닌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녀의 삶의 여정만으로도 매력이 차고 넘친다.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운 위대한 어머니의 성공담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랜 꿈을 키워 나가 마침내 성공한 대기만성 배우를 말하고자 함이다. 나는 그 지난한 시간을 담담하고 꿋꿋하게 살아낸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마이뉴스>의 은주연 기자의 말처럼 말이다. 은 기자의 다음과 같은 글 제목이 인상 깊었다.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복수'라니요, 저만 불편한가요?"이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집 나간 남편 대신 두 아들을 홀로 키워내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그녀의 인터뷰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배우 역시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를 잘 하는 법이다."(2009, 12, 09, MBC <무릎팍도사>) 그녀가 했다는 말을 소환한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갈며 '성공할 거야! 두고보라지!'라는 독한 결기를 뿜어내기보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을 수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간다. 오히려 독한 결기를 지녔던 그 시절이 더 불행했었다. 그걸 내려 놓는 순간 육체적, 정신적 균형을 찾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감사하면서. 그 감사가 윤여정의 내공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은 기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설사 윤여정이 마음 속으로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될 거야!'라는 칼날만을 갈았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오스카상 수상 소식은 들었을 지 몰라도 그녀의 우아한 수상 소감은 듣지 못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두고두고 회자될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만날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의 말에는 자신을 높이는 노욕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품격 있는 유쾌함, 고단한 삶이 주는 경륜, 그런 격조 있는 사람으로, 그녀는 '배우고 싶은 어른'이다. 그녀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 아니 자세를 배운다. 고단한 삶을 살고 나에게 희망을 준다. 지난한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내 삶에도 그런 여유와 품격이 마나리처럼 심어져 자랄 테니 말이다. 은기자의 말처럼, 더 나이 먹어 무슨 상을 타지는 못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격조 있는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우아한 노인이 된다면 성공한 삶이지 않을까? 오늘 아침은 주말농장에 심어 둔 미나리를 조금 잘나다가 저녁에 먹을 생각이다. 미나리 같은 애정의 씨앗을 내 마음 속에 뿌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상식과 다른 인터뷰에서 그녀가 했다는 말들 중,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포착된 것들을 공유한다.
(1) 각자의 색을 가진 배우들 간의 경쟁이 싫다는 그녀는 오히려 '최고'가 아닌 '최중'의 가치를 역설했다. "나는 '최고' '1등' 그런 말 싫어요. 우리 그냥 다같이 '최중'만 하고 살면 안 돼요?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 모든 것을 줄 세우고, 최고, 1등이 되기 위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되어버리는 경쟁 시대에 너무 좋은 말 이다. 최고가 아닌 최중이 되어 함께 더불어 살자는 말이 인상적이다.
(2) 이번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가장 큰 경쟁자는 글렌 크로스(<힐빌리의 노래>)였다. "글랜 클로스가 진심으로 받길 바랐어요. 참 대단하더라고요." 배우의 가치는 트로피 하나만으로 쌓이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 했고,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내가 운이 더 좋아 오늘 밤 이 자리에 섰다."
(3) 영화 <미나리>는 미국 내 인종 혐오에 대한 경고등 역할을 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윤여정의 수상은 분명 지난달 혐오 범죄 반대 시위에 나섰던 미국 내 한국계 및 아시아계 여화인들을 넘어 아시아계 혐오 및 범죄를 일삼는 미국인들에게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시상식을 주최한 아카데미 위원회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윤여정이 한 말은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람은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아요.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는데,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주요하고,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예쁘게 만들어야겠죠.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우리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들이잖아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끌어 안아야죠."
여기서 잠시 멈추고, 그녀가 미국 LA 총영사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했다는 기자회견의 어록은 시를 한 편 감상 한 후로 넘긴다.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그녀는 솔직하면서도 따뜻하고, 소탕하면서도 세련된 그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인터뷰였다고 한다. 윤여정은 '별'이다. 그래 이성선 시인의 <별을 보며>를 소환한다.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다.
별을 보며/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계속해서, 윤이정이 인터뷰에서 그녀가 했다는 말들 중,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포착된 것들을 공유한다.
(4) 자신만의 연기 철학은 '나의 약점을 알기에 열심히 대사 외워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했다." "편안하게 연기 좋아해서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절실해서 먹고 살려고 했었다. 대본은 저에게는 성경 같았어요." "예전에는 이 작품을 하면 내 성과가 좋겠다는 걸 계산했다"며 "환갑이 넘어서부터는 작품을 가지고 온 프로듀서가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출연을 결정한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해야 했던 지난 날들을 견뎌왔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키는 일만 할 수 있게 된 지금을 만끽할 수 있는 말 같다.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어요. 내가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으면 그게 사치." 나도 오늘 아침 배운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키는 일만 하다가 죽을 테다.
(5) 그녀는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화녀>의 고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올해로 74세이다. 그녀는 "이제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데 현장에서 누구도 모욕 주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며 컨트롤하더라고요. 43세 먹은 감독한테 제가 존경한다고 했어요. 그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배우를 오래 해서 그런 것이겠죠. 제가 김 감독에게 못한 것을 지금 정 감독이 다 받는 것 같아요."
(6)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없다"고 말하면서 "살던 대로 살아 야지/ 제가 오스카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거 아니잖아요." "(대본을 못 외워서) 남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는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했 단다.
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국적을 떠나 중국인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작품상 및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분을 휩쓸었다는 점이다. <노매드랜드>는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사가 제작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이 연출한 작품이다. 영어로 노매드는 프랑스어로 하면 노마드이다. 한국 말로 하면, 유목민이다. 어쩌면 <미나리>의 바퀴 다린 자동차 집과 관련이 있다. 중앙일보의 이후남 문화디렉터가 영화 <미나리>와 <노매드랜드> 속에서 본 "노마드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글도 좋은 지적이라 나는 생각한다.
노매드, 아니 노마드는 집없이, 아니 자동차를 바퀴 달린 집 삼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디지털 노마드처럼 원격으로 일하는 대신 일자리를 찾아 차를 몰고 이동한다. 연말에 밀려드는 상품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직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는 아마존이나, 여름 시즌 캠핑장 관리자를 단기적으로 고용하는 국립공원 같은 곳이 그런 일자리다. 이런 노마드가 급증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이들을 다년간 취재한 미국 기자 제시카 브루더가 쓴 『노마드랜드』 따르면, 그 상당수가 은퇴 연령대의 나이 든 사람들이다.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집세를 감당할 수 없거나, 경제위기로 중산층에서 추락한 이들이다.
바퀴 달린 집은 공교롭게도 영화 ‘미나리’에도 나온다. 한눈에 봐도 볼품은 없지만, 한국계 이민자인 주인공 가족이 새로운 정착지 아칸소에서 살아가는 기반이 되는 소중한 집이다. 이민자와 토착민, 유목민과 정착민은 지구촌 곳곳에서 그 경계가 뒤섞이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서로에 대한 강한 배척과 경계심도 불거진다. 이런 세상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은 한국 이민자의 이야기 ‘미나리’의 한국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미국 노마드의 이야기 ‘노매드랜드’의 중국 출신 감독 클로이 자오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노마드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한번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덧붙임은 블로그로 옮긴다.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된다.

TMI (1) 왜 오스카상인가? 아카데미 상에서 주는 트로피 이름이 오스카이다. 높이 34cm이고 중세 기사가 검을 땅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합근으로 되어 있고, 받침대에 5개의 바퀴살이 있다. 이는 영화의 주요 구성원들, 즉 배우, 감독, PD, 기술 스탭, 작가를 상징한다. 오스카란 이름의 유래는 다양하다. 1931년 주관기관인 아카데미 도서관 사서인 마가릿 헤릭(Margaret Herrick)이 트로피를 보고 자신의 삼촌 오스카를 닮았다고 말하면서 이름 굳어졌다는 설과 1920년 벳 데이비스가 자신의 남편 오스카 넬슨과 닮았다고 했다는 설과 칼럼니스트가 글을 쓰다 트로피의 이름을 오스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라는 설이 있다.
(TMI (2) 아카데미(academy)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아테네에 연 아카데메이아(그리스어: Ἀκαδημία)에서 유래해, 르네상스 이후 학술단체, 학회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학원(學院)의 명칭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림원(翰林院), 학술원(學術院), 학사원(學士院)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아카데미’의 출발을 알아보자. 영웅 테세우스와 쌍둥이 형제(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유부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들)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친구 페이리토스와 함께 쌍둥이 형제의 누이 헬레네를 납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은 헬레네를 꽁꽁 숨겨놓았다. 쌍둥이 형제는 납치범들이 누이를 숨긴 곳을 수소문했지만 도저히 찾아낼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아카데모스라는 사람이 쌍둥이 형제에게 헬레네가 숨겨진 장소를 귀띔해주었다. 누이 헬레네를 되찾은 쌍둥이 형제는 아카데모스의 공을 기려 그의 고향을 ‘아카데모스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했다. 나중에 철학자 플라톤이 아테나이 근교에 있는 이곳에 철학학교를 세우고는 ‘아카데메이아’라고 부르게 했다. 여기에서 ‘학교’, ‘학원’을 뜻하는 영어 단어 ‘아카데미’가 나왔다고 한다.
TMI (3)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는 ‘신인상’이 없다.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신인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연상이어야 한다. 신인상은 남보다 ‘빠른’ 성취에 부여하는 상이다. 부러움을 더 크게 받는다. 하지만 신인상 수상 이후,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기대만큼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모습도 자주 본다. ‘2년차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주연상을 받은 사람은 최고의 경지에 있을 때 받기 때문에 큰 기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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