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견고한 것을 뚫는다."

214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8일)

오늘은 노자 <<도덕경>> 제43장을 읽을 차례이다. 이장의 제목을 붙인다면, '부드러움의 능력'이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견고한 것을 뚫는다"는 거다. 길지 않으니, 원문과 번역을 먼저 공유한 후, 정밀 독해를 한다.

天下之至柔(천하지지유) 馳騁天下之至堅(치빙천하지지견) :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지극히 견고한 것을 뚫고 들어간다. 
無有入無間(무유입무간) 吾是以知無爲之有益(오시이지무위지유익): 무는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갈 수가 있다. 나는 이것으로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 
不言之敎(불언지교) 無爲之益(무위지익) 天下希及之(천하희급지): 말없는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에 미칠 만한 것이 없다.


천하의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지유치빙지견(至柔馳騁至堅)이라 말할 수 있다.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지극히 견고한 것을 뚫고 들어간다'는 거다. "치빙(馳騁)"은 말을 타고 이리저리 내달리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뚫고 들어간다는 의미로 보기도 하고, 완벽하게 제어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은 말을 제어할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부린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지유(至柔)가 지견(至堅)을 제어한다고 읽을 수 있다. 마치 여자가 남자를 제어하고, 물이 불을 제어하는 것과 같다. 

 "지유치빙지견(至柔馳騁至堅)"은 제36장에 나왔던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견고한 것을 이긴다)과 같은 뜻을 갖는다. 강한 다이아몬드를 뚫고 지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고 견고한 물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둘 다 부서지고 만다. 물과 같은 가장 부드러운 물질이라야 다이아몬드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 나는 이것으로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는 거다. 중국 한나라의 명장 이광이 어느 날 산속을 가다가 호랑이를 발견하고 화살을 쏘아 정통으로 맞혔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바위였다. 그런데 바위라는 것을 알고 다시 쏘니 화살이 계속 튕겨져 나왔다. 마음속에 바위가 없는 상태, 즉 무(無)의 상태에서는 바위를 뚫을 수 있었지만 바위를 채운 상태, 즉 유(有)의 상태에서는 그것을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유'를 뚫을 수 있는 것은 '무'밖에 없다. 왕필은 "무유입무간(無有入無間,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에도 들어간다)"에 대해 "기(氣)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없고, 물은 스치지 못하는 곳이 없다(기무소불입, 수무소불경(氣無所不入, 水無所不經)고 주를 달았다.

말하지 않는 가르침, "불언지교(不言之敎)"의 '불언'이 뜻하는 것은 무위지익(無爲之益)에서 '무위'가 갖는 의미와 같다. 말하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하지 않고 하는 것과 같다. 성철스님과 같이 공양을 하던 수행자가 식사를 마친 후 ‘한 말씀 해 달라’고 청하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밥을 다 먹었으면 바리떼(수행자가 쓰던 밥그릇)를 치우 거라."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 하라'는 뜻이다. 가르침에 관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가르침이다. 말하지 않는 가르침, 간섭하지 않는 유익함,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거다.

"무위지유익(無爲之有益)"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 않음의 힘으로 성과를 내자는 거다. 물의 속성이 '무위(無爲)'와 닮았다. 부드럽고 약하지만 강하고 센 것을 이기는 물의 속성은 부드럽게 상대방을 이끄는 무위의 모습이다. 물은 폭우가 되어 가파른  계곡에 흐르면 큰 바위도 떠오르게 한다. 물은 상대방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주장하지 않기에 엄청난 설득의 힘을 만들어낸다. 지극히 부드럽지만(지유) 지극히 강한(지견) 바위와 쇠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속성이 물의 속성이다. 부드러운 물이 강한 쇠와 돌멩이를 마음대로 주무르듯이, '무위'는 상대방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주장이 강하고, 상대방을 힘으로 몰아붙이는 사람은 결국 부드럽게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에게 지게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다.

"없음(無有)"은 자신의 모습을 어떤 모습(유)이라고 규정짓지 않는 물의 비유이다. 물은 자신의 모습을 주장하지 않기에 어떤 공간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심지어 공간이 없는(無間) 곳에도 물은 들어간다. "없음만이 틈이 있는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칼이 얇으면 얇을수록 베는 물건 속으로 잘 들어가듯이 자기 고유의 형체를 줄이면 줄일수록 좁은 틈사이로 그만큼 더 잘 들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섞일 수 없다. 자기를 진정으로 비운 사람만이 무애(無碍)의 경지에 어느 누구 와도 진정한 의미의 교류가 가능하게 된다는 뜻일 거다.

노자는 물의 속성을 리더의 무위(無爲)의 일 처리 방식과 비교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저절로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힘이 무위의 힘이다. 말하지 않았는데도(不言) 상대방은 저절로 교화(敎)된다. "불언지교"이다. 강요하지 않았는데도(無爲) 상대방은 저절로 움직인다. '무위'는 '유익'하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무위지익"이다.

노자는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억지로 뭔가 이루어 내겠다고 뻣뻣하게 나가거나, 강제로 세상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고, 물처럼 묵묵히 설치거나 조급함 없이 순리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 것, "함이 없는 함', '무위의 위'가 더욱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원래 인간은 설득되지 않는 존재이다. 억지로 강요해서 내 말을 따르게 하는 결과는 잠시 뿐이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기에 오래가지 않는다. 자발적 선택과 동의가 지속적인 힘을 갖는다. 말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하게 만드는 힘이 무위의 힘이 고 유익함이다. 이것이 도의 속성이고, 이런 도의 속성을 살천하는 사람이 성인이다. 성인은 무위의 실천 자이고, 도의 수행자이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산다. 천양희 시인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집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하고 오다가 만난 감나무이다. '무위'의 모습이었다. 나는 감나무를 볼 때 애잔한 마음이 든다. 함민복 시인의 시처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애처롭다. 나는 세상에서 희생이라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감나무라고 본다. 자기 것을 다 쏟아내고, 비우면서 저 붉은 열매, 감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한마디/천양희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내게
사람이 되어야지"란 말을 제일 많이 하셨다

​꾸지람을 하실 때도 칭찬을 하실때도
나는 늘 그 한마디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알아서 해야지"란 말씀을 제일 많이 하셨다

꾸지람을 하실 때도 칭찬을 하실 때도
늘 그 한마디 "알아서 해야지"

어머니 보시기에 내가 과연 사람이 되었을까
어머니 보시기에 내가 과연 알아서 하고 있을까?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잎사귀 하나/까비르(인도 시인)  (0) 2022.10.21
손/이정오  (0) 2022.10.21
정답은 없다.  (0) 2022.10.20
가을의 기도/김현승  (0) 2022.10.20
사람마다 서랍을 만든다.  (0) 202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