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일요일마다 만나는 잠언(箴言)들이다. 좋은 잠언 하나는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갖다고 본다. 삶의 진리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잠언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근육을 키워준다. 한 주간 모은 것들 중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몇 가지 공유한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어제 우리는 주말농장에서 작년에 땅 속에 묻어둔 김치를 꺼내고, 올해 모종으로 심어 첫 수확한 야채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김치 사진이다.
내가 좋아는 단어 중의 하나가 '숙(熟)' 자이다. 숙고, 숙려, 숙성, 성숙 등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음식의 비결이 있다. 익을 '숙'자이다. 삶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와인도 잘 숙성된 와인이 최고로 대접받는다. 사람도 성숙을 향한 과정이 훌륭해야 잘 사는 "웰-빙(Well-Being)이 아닐까?
뜨거운 음식은 뜨겁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내라는 것이다. 온도는 맛의 기본이다. 하지만 음식을 더 맛있게 하는 비결이 있다. 음식 안에 시간과 계절을 담아야 한다. 오래 발효된 장이 깊어지는 것도, 김치가 숙성되는 것도, 오래된 차가 맛있어지는 것도 그런 이치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재료의 원형질과 한계를 동시에 먹는 일이다. 대표적인 것이 봄의 나물과 새순이다. 특정 시기가 지나면 질기고 써져서 못 먹는 것이 봄에 피어나는 나물의 한계인 동시에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걸 알고 나면 음식은 '때우는 것'이 아닌 '음미하는 것'으로 형질이 변환된다. 봄의 새순들을 먹으면서, "지금 우리가 봄을 먹는군요"라고 말한 건 시인의 은유가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 우리가 먹은 건 음식이 아니라 계절이며, 혹독하고 매서운 겨울을 뚫고 기어이 싹을 틔운 봄의 초록 기운이기 때문이다. 이때 음식은 몸을 살리는 약이 된다.
깊은 맛/김종제
모름지기 배추는
다섯 번은 죽어야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는데
밭에서 잘 자란 놈을
모가지 잡아채서 쑤욱 뽑아내니
그 첫 번째요
도마 위에 올려놓고
번득이는 칼로 몸통을 동강내니
그 두 번째요
커다란 고무다라에
소금물 뒤집어쓰고 누웠으니
그 세 번째요
고춧가루에 마늘에 생강에
온몸이 붉은 피로 뒤범벅이 되었으니
그 네 번째요
마지막으로 독이란 관에 묻혀
흙 속으로 다시 돌아가니
그 다섯 번째라
푸르뎅뎅한 겉절이 같은 것이 아니라
시큼털털한 묵은지 같은 것이 아니라
쓴맛에 매운 맛에 단맛까지
몇 번은 죽어
깊은 맛을 내는 김치처럼
우리네도
몇 번은 죽었다가
몇 번은 살았다가
곰삭은 인생이야말로
깊은 맛을 지니는 것 아닌가
잘 익은 저 주검을
손으로 집어
한 입 먹어주는 것도
生에 한 발 더 깊이 빠지는 일이겠다
이번 주에 만난 잠언 10: 페이스북에 올라온 '머니맨'이라는 분의 포스팅에서 참고한 거들도 있다.
1.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아쉬워하거나 억울해 할 것 없다. 그건 당연한 거다. 알아보는 사람이 특별한 것이지 대부분 내게 관심조차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우리는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대놓고 그냥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세히 봐야 매력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매력이 뿜어져 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실력을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아직 내가 내 실력을 보여줄 내공이 없는 거다. 이 관점 차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가른다.
2.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내 의지로 나를 통제할 수 있어야 자유에 다가갈 수 있다. 첫째는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여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인생은 허무함만 남는다. 두번째는 자신에게 엄격하여야 한다. 흥청망청 흘러가는 대로 막 사는 걸 자유롭게 산다고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남에게는 관대하여야 한다.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고, 대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적당히 넘어가야 한다. 교조(敎條)적으로 남을 고치려 할수록 자신만 더 옭아맬 뿐이다. 남에게 관대하다는 건 함부로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에게 더 집중하라는 의미가 크다. 간단히 말하면, 자유로운 삶을 원하다면, 가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타인을 함부로 옭아매지 않는 것이다.
3. 말과 행동 중 진짜 의지를 증명하는 건 오직 행동 뿐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연인에게 욕하고 패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거다.
4. 성공해야 진짜 친구를 알 수 있다. 위로보다는 축하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내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친구만 끝까지 내 옆에 남을 수 있다. 내 성공을 축하해 줄 수 없는 친구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때가 되면 떠날 인연이다. 친구들은 내가 늘 가능성만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길 원했는 지 모르겠다. 상대를 사심 없이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것이다.
5. 우리가 흔히 재수가 좋았다 또는 운이 좋았다고 하는 데, 사실 그건 실패 후 다시 도전하는 실행 속력을 올려 기회비용을 낮추는 게 실력이고, 여기서 나온 결과가 운이다. 운(運)은 꾸준함과 동전의 양면이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개선해서 다시 시도하면 된다. 시도를 미루지 말고 일단 도전해보고 만약 시도했다면 계속 문제를 고치며 꾸준히 밀어 붙이는 거다. 그러니까 무한 도전이다. 그게 성공의 운을 부르는 필수 태도이다. 잘하려고 준비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게 서두르다 망하는 것보다 나쁘다. "끝내지 못한 일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있다. 시작도 못한 일이다."(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 평생 말 한마디 못 하고 끝난 짝사랑보다 망한 고백이 훨씬 낫다.
6.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려고 돈을 벌고, 그 돈을 벌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뭔가 이상한 순환구조이다. 그래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한다. 더 이상 뭔가를 사지 않으리라. 있는 것도 제대로 못 쓰니 그만 소비한다. 그러면 그걸 살려고 돈을 버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7.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를 곁에 두지 마라. 그게 누구든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에 해만 될 뿐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건 역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상대를 존중할 수 없다면 따로 관계를 돈독히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잘난 친구를 옆에 두면 쓸모 있을 거라 무의식 중에 착각하곤 한다. 그 친구가 아무리 잘나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가 필요한 순간에 아무 도움도 안 준다.
8. 예술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그만큼 낯가림이 없다. 그래 예술가들의 모임은 방자하다. 방자한 어울림이다. 거기서 꽃이 핀다. 모딜리아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그림 한 점을 팔고는 신이 나 한 턱내겠다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그 손님들 중에는 그들의 단골 술집 주인도 끼어 있었다. 그를 본 모딜리아니는 갑자기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술집 주인은 방 안을 쑥 훑더니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분위가 좀 뒤숭숭하던 중에 나갔던 술집 주인이 술병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여기 술잔, 스푼, 테이블, 의자까지 모두 우리 집 건데 술만 아니어서", 자기가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모딜리아니가 술집에서 슬쩍해 온 것들이다. 그런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를 휩쓸며 5천만명을 죽인 스페인 독감에 희생되어 서른다섯 나이로 죽는다.
9. 뉴스를 다 읽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간다. 모든 정보를 소비하려 하지 말고 적은 양의 품질 높은 정보에 초점을 맞춰 에너지를 쏟는 것이 현명하다. 마찬가지로 파티에 참석했을 때 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모든 인물과 만나려 하기보다는 눈여겨본 한 명의 사람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이것이 곧 짧은 인생을 사는 지혜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두 명에 몰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10. 자기를 원망하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는 행위도 없다. 그래 행복한 인생이 되는 첫 번째 습관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무관심하거나 나를 비난하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나 하나쯤은 온전히 나를 사랑해도 된다. 내가 한 선택을 확신하고 내 길을 가야 한다. 자기 스타일로 사는 데 자신감이 없다면 나만의 매력이 생길 수 없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야 남도 나를 아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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