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번 주부터 사람들 만나는 횟수를 좀 늘렸다. 그러다 오늘은 미팅이 아침 9시이다. 그래 일찍 나간다. 시간이 없다. 코로나 19 이후의 "뉴-노멀(New-Normal)"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일로 미룬다. 대신 지난 4월 18에 아침에 하던 『고수들의 질문법』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 아침 사진은 다 잘려도 새 가지가 나오는 나무를 찍은 것이다. 희망적이다. 희망은 우리를 살린다. 희망은 언제나 믿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만이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승리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자신의 목숨을 건 자의 것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호기심에 대한 주장을 하는 심리학자 대니얼 빌라인(Daniel Berlyne)은 말했다. "호기심은 지식에 의해 생겨나는 동시에 지식의 부재에 의해 촉발된다. 어떤 정보를 접하면 그것이 무지를 지극해 알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간극을 좁히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음악적 뇌가 불협화음에 반응하듯 과학적 호기심은 지식의 빈틈, 지식의 간극에서 나온다." 호기심이 생기려면 그것과 관련해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 호기심도 질문도 나올 수 없다. 그래 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다시 사랑이/ 홍성란
사랑이 시작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다시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외딴섬 지독한 고독만이 어둠 속에 빛이어도
밀어닥치던 사랑이 나를 축복하고 떠나도
하얀 낙화(落花) 천천히 배경으로 물러나도
사랑이 시작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오늘 아침은 이런 문장부터 시작한다. "답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문제를 내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나에게도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이다. 논문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제목을 정하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는 특히 프랑스에서 박사학위 논문 제목을 정하는 데 실감을 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제목을 정하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문제가 무엇인지 누가 알려줄까? 인생도 논문 쓰기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정의하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것인가를 정하는 것과 같다. 논문도 제목을 정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고쳐 나가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삶도 논문 제목을 정하는 것처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정의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나타나고, 과정 중에 문제가 드러나고, 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인지 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삶은 문제를 내주고 언제까지 풀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알아서 문제를 내고 알아서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 문제를 푸는 것은 쉽다. 문제를 내는 것이 어렵다.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면 나머지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답하는 것보다 문제를 질문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럼 어떻게 질문하여야 하나? 우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질문해 본다. 저자는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한다. "일을 열심히 했을 때 가장 큰 보상은 뭘 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 자아 성취, 칭찬, 인센티브 같은 답변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르게 답한다. "일을 열심히 했을 때, (…) 계속 일이 들어 온다"이다. 그러면 일을 하면서 일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는 더 나아진다. 좋은 질문은 통념에 저항하는 질문이다. 남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혁신은 통념의 저항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해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게 질문의 힘이다.
질문도 알아야 한다. 알려면, 새로운 것을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다 보면 호기심이 생기고, 거기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더 알아보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며 제 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답답하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남 이야기나,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의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를 길게 하는 사람을 나는 싫어한다. 저자도 그렇다고 한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을 보면, 할 이야기가 있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불필요한 화젯거리를 자꾸 끄집어낸다고 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의 멋진 정의가 "내가 아는 것과 더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책 한권 읽고 세상 다 아는 척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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