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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그리운 바다 성산포 1/이생진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20일)

제주도에서 보내는 이틀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오늘 사진이 그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성산포이다. 제주도에 오면 이생진 시인이 늘 소환된다. 내가 있는 곳은 산방산과 송악산이 있는 남 제주이다. 오늘은 제주의 슬픈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래 우선 다음 시를 읽고 시작한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1/이생진

아침 6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 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 소리에 귀를 찢기 운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 거다

제주는 불과 물의 투쟁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투쟁은 생명의 본질이다. 물과 불, 누가 이겼나? 무승부이다. 바다가 용암의 홍수를 삼키고 냉각시켜 현무암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결국 불이 패배한 것인가? 아니다. 불은 바다 한 가운데서 용솟음쳐 올라 새로운 땅, 큰 섬 하나를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무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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