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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춤/박형준

언젠가 나는 <인문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두었다. '대2병'이란 말이 있다. 이 병이 생긴 건 일정 정도 명문대 진학이라는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욕구로 착각한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 방황이다. 삶의 경험이 적은 10대의 아이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그 안에서만 꿈꾸라고 하는 건 폭력일 수도 있다. '알고리즘'조차 통찰을 얻으려면 대량의 빅데이터(경험)가 필요하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사람들이 뇌과학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행복해지고, 머리가 좋아지는 질문이라 했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이 "춤 추자"라 했다. 뇌과학자들은 너무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보다 작은 목표들을 여러 차례 달성하는 것이 더 큰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작은 구간 목표들을 설정해서 계속 밀고 나아가는 데 필요한 도파민 효과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춤을 배우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무엇보다 춤은 유연성을 가르친다. 절권도의 창시자 이소룡은 1958년도 홍콩 차차차 댄스 선수권대회 우승자였다. 뛰어난 격투기 선수들의 몸은 단단하지만 유연하다. 실패와 무기력은 성공보다 더 쉽게 학습된다. 좋은 예가 있다. 조선업 불황으로 부모의 해고(解雇)를 지켜보고, 성적까지 바닥이던 아이들이 춤을 통해 작은 성공을 체계적으로 경험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은 그래서 더 '과학적'이다. 아이들은 '전국상업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땐뽀걸즈'는 거제여상(女商) 아이들의 실제 얘기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은 좋은 선생님 옆에서 난 춤바람이 이 아이들을 살린 것이다. 오늘은 박형준 시인의 <춤>이라는 시를 공유한다.

춤/박형준

첫 비행이 죽음이 될 수 있으나, 어린 송골매는
절벽의 꽃을 따는 것으로 비행연습을 한다.

근육은 날자 마자
고독으로 오므라든다

날개 밑에 부풀어오르는 하늘과
전율 사이
꽃이 거기 있어서

絶海孤島,
내리꽂혔다
솟구친다
근육이 오므라졌다
펴지는 이 쾌감

살을 상상하는 동안
발톱이 점점 바람무늬로 뒤덮인다
발 아래 움켜쥔 고독이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상공에 날개를 활짝 펴고
외침이 절해를 찢어 놓으며
서녘 하늘에 날라다 퍼낸 꽃물이 몇 동이일까

천 길 절벽 아래
꽃 파도가 인다

춤이란 원래 신나거나 흥겨울 때 추기 마련인데, 이 시는 첫 비행에서 죽음과 맞닥뜨릴지도 모르는 송골매의 날개 짓을 춤이라고 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조르바는 광산 사업의 파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춤을 춘다. 그 춤은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으로 비친다. 그리고 그 춤속에는 해방이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한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 가가 시작되는 느낌의 해방을 엿볼 수 있다. 억압이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해방이 아니다. 지나치게 믿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남 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

주인공 조르바에게 인생은 한바탕 추는 춤이다. 그에게 춤이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일단 술 한잔 마시라고 권한다. 그리고 함께 들이킨 다음, 자신이 나가서 춤을 출 테니 보라고 한다. 춤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춤을 추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을, 관념 속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춤추고 있는 자기 인생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을 긍정하고 삶을 찬미하는 인문 정신이다. 인문 정신 살아 있는 삶에 대한 찬미로부터 시작한다.

조르바에게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몸뚱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그 일에만 집중한다.  조르바처럼 생각하고 싶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존재는 마주하는 이 시간 속에 있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던지 간에. 밥 먹을 땐 밥만 생각하고, 걸을 때는 걷는 것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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